같은 '경찰'에 엇갈린 판단…관할서 유죄·청장 무죄
쟁점은 '예견가능성'…"김 전 청장에 엄격히 적용"
[서울=뉴시스]임철휘 기자 =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 혐의로 기소된 김광호(60) 전 서울경찰청장에게 1심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같은 '경찰'인 이임재(54) 전 서울 용산경찰서장은 지난달 유죄를 선고받았다.
일선 경찰의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는 인정됐지만, 경찰 각 기능의 지휘·감독 권한을 갖고 있던 당시 서울청장의 혐의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법원이 판단한 것이다.
18일 서울서부지법이 낸 설명자료와 법조계 의견을 종합하면 재판부가 김 전 청장과 이 전 서장의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에서 달리 본 부분은 사고의 '예견가능성'이었다.
우선 김 전 청장의 경우, 재판부는 김 전 청장의 사고 예견가능성이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 심리를 맡은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2부(부장판사 권성수)는 전날 판결 이후 낸 설명자료에서 예견가능성의 판단기준에 대해 "표준에 비춰 통상 예견할 수 있는 범위를 넘는 이례적인 사태의 발생까지 예견하고 대비할 것까지 요구할 수는 없다"고 썼다.
재판부는 이를 기준으로 삼고 용산서와 서울청 내부의 정보보고, 경찰의 '다중운집 행사 안전관리 매뉴얼' 등을 통해 김 전 청장이 사고를 예견할 수 있었는지 심리한 후 "이태원 참사와 같은 형태나 규모의 안전사고의 위험성을 예측, 인식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판시했다.
이에 비해 이 전 서장의 심리를 맡은 재판부는 이 전 서장의 예견가능성을 조금 더 폭넓게 인정했다고 볼 여지가 있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배성중)는 선고 직후 낸 설명자료에서 '예견가능성 판단 기준'에 대해 "대형 참사의 결과 전부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정 공간에 군중의 밀집으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일반적인 사고, 즉 전도·추락·압사 등의 안전사고라는 결과'의 발생을 예견할 수 있었고 이를 회피할 수 있었는지를 기준으로 한다"고 적었다.
사고의 규모가 이태원 참사 같은 대형 참사가 아니더라도 사고를 예견할 수 있다면 관할 경찰서장의 구체적인 주의의무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이를 기준으로 두고 당시 이태원 인파집중을 예측하는 언론보도, 용산서의 과거 핼러윈데이 치안대책 등을 살펴본 뒤 "이태원 일대 경사진 좁은 골목길에 수많은 군중이 밀집돼 보행자들이 한 방향으로 쏠리거나 넘어지며 서로 압박해 생명·신체 등에 심각한 피해가 발생할 위험성이 있음을 예견했거나 예견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조계에서는 김 전 청장에게만 참사를 예견할 가능성을 더 엄격하게 적용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김 전 청장의 판결은 예견가능성 부분에서 결국 대규모 인파 사고까지 예상했어야 한다는 게 기준이 됐다"며 "이 전 서장의 경우엔 다중인파가 운집하면 안전사고가 발생이 우려된다 수준이어서 재판부의 관점과 해석이 달랐다"고 지적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10·29 이태원 참사 TF 소속 최새얀 변호사는 "김 전 청장의 판결과 이 전 서장의 판결이 크게 배치된다"고 했다.
최 변호사는 "이 전 서장의 경우에는 압사 등 안전사고를 예견할 수 있었다면 구체적인 주의 의무가 따른다고 판단해 '예견가능성'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그런데 김 전 청장의 경우 대형 사고가 예견됐어야 주의의무가 발생한다고 봤다. 예견가능성에 대한 기준을 매우 엄격히 살핀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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