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이수지 기자 = 우리나라에서 우생학은 사이비 과학으로, 20세기 비극으로 알려져 있다.
생명을 살 가치가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나누고, 살 가치가 없다고 판단된 사람들의 생식 또는 생존을 막은 우생학은 다른 나라 이야기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약 100년 전 일제 지식인들은 민족을 발전시킬 수단으로 우생학을 소개했다. 해방 이후로도 대한민국의 과학자와 의학자들은 '민족우생'이란 기치를 내걸어 선진국으로 도약하려면 우생법을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사이 한센인과 장애인이 국가에 의해 강제불임시술을 당하는 비극이 일어났다. 산전진단기술의 발달과 함께 유전병을 가진 태아를 감별하려는 시도가 보편화됐다.
책 '우리 안의 우생학'(돌베개)의 저자들은 일제강점기부터 최근까지 과학사, 의학사, 의료사회학, 장애사, 젠더 관점에서 우생학이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고 영향을 미친 국면들을 추적한다.
이 책은 우생학이 어떻게 사회적 약자들을 부적격자로 구분하는지, 그로 인한 차별을 어떻게 자연스러운 것으로 만드는지, 그 과정을 통해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보건, 복지, 교육 등 여러 분야에 어떻게 녹아들었는지 드러내 한국 사회에서 이뤄진 차별 양태를 문제 삼는다.
저자들은 조선의 지식인들이 우승열패의 세계질서에서 민족의 생존을 가능케 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우생학을 어떻게 수용했는지 살펴본다.
주로 의학자와 과학자들이 어떻게 우생학을 과학으로 만들고 교육했는지, 어떻게 국가 정책에 개입하려 했는지 다루면서 실제 우리나라에서 우생학적 목적에 따라 실행된 강제불임수술 사례를 소개한다.
전국 시설에서 강제 단종과 낙태수술로 피해를 입은 한센인 사례, 이 땅에 태어난 혼혈아들의 해외 입양 역사, 정신병원이나 요양 시설에 격리된 여성들의 수난사도 살펴본다.
◎공감언론 뉴시스 suejeeq@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