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생겨도 젠더폭력 예방효과 無…제도는 멀고 차별은 가깝다"(종합)

기사등록 2024/10/16 14:04:35 최종수정 2024/10/16 15:56:16

직장갑질119 스토킹처벌법 3주년 토론회

직장인 1000명 중 22.6%가 성희롱 경험해

"고용노동부, 과태료 부과 비율 10% 안돼"

"스토킹처벌법? 절반 이상이 효과 없다고"

"노동위원회에 고용평등과 별도 설치돼야"

[서울=뉴시스] 권창회 기자 =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스토킹처벌법 시행 3주년 토론회 '일터에서 여성들이 사라진다'가 열리고 있다. 2024.10.16. kch0523@newsis.com
[서울=뉴시스]권신혁 기자 = 직장 내 성희롱, 스토킹 등 '젠더폭력'이 여전한 가운데, 피해근로자들이 정부로부터 충분한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관련 법제도의 실효성과 신뢰도가 떨어졌다는 지적이다.

16일 오후 직장갑질119가 스토킹처벌법 시행 3주년을 맞아 개최한 토론회에서 여성폭력 전문가들은 "젠더폭력으로 인해 직장에서 여성들이 사라지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직장 내에서 발생하는 성차별, 성희롱, 스토킹 등의 사건을 접수하고 피해자를 구제하는 노동위원회와 고용노동부 등 정부의 역할이 미미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직장갑질119와 아름다운 재단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올해 5월31일부터 6월10일까지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직장 내 성범죄 피해 경험을 조사한 결과 22.6%가 성희롱을 경험해봤다고 답했다.

또 경험 시점을 1년 이내로 좁히면 지난해 8월 기준 14.2%에서 올해 20.8%로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직장 내 스토킹의 경우 1년 이내 경험했다는 응답은 지난해 15%에서 올해 16%로 제자리걸음했다.

정부는 이 같은 고용상 성차별, 직장 내 성희롱과 관련해 피해근로자가 노동위원회에 시정신청을 할 수 있는 제도를 2022년부터 운영 중이다.

그런데 실제 구제 건수는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강은희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노동위원회 시정신청제도 사건처리 현황을 보면 우선 신고된 사건 건수가 굉장히 적다"고 짚었다.

현황에 따르면 2022년 3분기부터 올해 1분기까지 시정신청된 성희롱 건은 57개에 그쳤다. 그 중 18건에 대해 시정명령이 내려졌다.

강 변호사는 이 같은 결과의 배경을 두고 직장인들이 해당 제도를 모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봤다. 직장갑질119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인의 59.5%가 시정신청 제도를 알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아울러 고용부는 '남녀고용평등법'을 기반으로 직장 내 성희롱, 성폭력 등에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는데, 강 변호사는 "신고된 사건 중 과태료가 실질적으로 부과된 비율은 10%가 채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2020년 이후 고용부에 신고된 남녀고용평등법 위반 사건 처리현황에서 과태료 부과 비율을 보면 성희롱의 경우 6.8%, 기업의 조사의무 위반은 6.3%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강 변호사는 ▲지방노동관서 고용평등과 설치 ▲고용상 성차별·성희롱 사건 신고감독제 대상 포함 ▲근로감독결과 공표제 도입 등을 촉구했다.

아울러 이날 발제를 맡은 김세정 노무법인 돌꽃 노무사는 스토킹처벌법 및 방지법과 관련해 직장인들의 신뢰도와 인지도가 낮다고 지적했다.
[서울=뉴시스] 권창회 기자 =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스토킹처벌법 시행 3주년 토론회 '일터에서 여성들이 사라진다'가 열리고 있다. 2024.10.16. kch0523@newsis.com

김 노무사는 직장갑질119의 실태조사를 인용하며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되고 있음을 알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62.8%로, 시행만 3년이 됐는데도 여전히 법의 존재를 모르는 직장인이 10명 중 4명"이라고 말했다.

또 처벌법의 효과를 묻는 질문에 절반 이상인 58.2%가 법 시행 후 스토킹이 줄어들지 않았다고 답했다. 스토킹방지법과 관련해서도 직장인 10명 중 4명만이 효과가 있다고 응답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들은 정부의 보호에도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김 노무사는 "대한민국 정부가 직장 내 성범죄로부터 자신을 잘 보호할 것인지 묻는 질문에 '동의함'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39.3%로 나타나 직장인 10명 중 6명이 정부를 신뢰하지 못하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김 노무사는 "관련 법제도 시행이 젠더폭력 예방에 전혀 효과가 없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법제도 활용 사례를 적극 홍보하고 관리 및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며 "여성폭력 방지와 피해자 지원을 위한 예산을 회복시키고 여성가족부 등 관련 부처를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두번째 발제를 맡은 박은하 노무사사무소 지담 노무사는 직장 내 '젠더감수성'이 낮다고 봤다.

직장갑질119와 아름다운재단이 지난달 2일부터 10일까지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성차별 조직문화지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차별적 처우 지표가 모두 F등급으로 나타났다.

해당 지표는 직장 내 주요직책, 노동조건, 채용, 승진 등과 같이 시정신청이 가능한 사안들이다.

박 노무사는 "존재하는 제도들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며 "특히 젠더폭력에 취약한 여성들에게 제도는 여전히 멀고 차별적 문화는 현실적으로 더 가까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토론에 참여한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직장 내 젠더폭력과 성적 괴롭힘이 노동자에게 어떤 부정적 효과를 초래하는지 실태조사를 통해 데이터를 수집해야 한다"고 했다.

또 "근로감독을 강화하고 심사위원회에 여성위원을 포함하도록 하는 등의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 조사관은 '안전휴가법' 제정을 건의하기도 했다. 폭력 피해 근로자가 해고의 불안과 위험 없이 일을 잠시 쉴 수 있도록 허용하자는 것이다.

정부 측에선 조정숙 여성고용정책과 과장이 "지난 21대 국회에서 직장 내 성희롱 과태료 부과 대상에 법인 대표자를 포함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추진했으나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며 "이번 국회에서도 피해자 권리구제를 강화하기 위해 법 개정을 재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선옥 여가부 가정폭력스토킹방지과장은 "현실적으로 제도와 피해자들간 간극이 크다는 것은 여전하다"며 "이 괴리를 지속적으로 좁혀가는 것이 여가부의 역할"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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