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닉 최초 개발 HBM, AI 시대 총아로 부상
"그게 되겠어" 비관론 딛고 독자 기술 닦아
솔리다임 투자도 성과…AI 메모리 1위 도약
9일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HBM이 처음 세상에 나오기 4년 전인 2009년부터 고성능 메모리를 구현하기 위한 'TSV(실리콘관통전극)' 기술에 주목하고, 적극적인 투자를 이어왔다.
TSV는 D램 칩에 수천 개 미세 구멍을 뚫고 상하층 칩 구멍을 수직으로 관통하는 전극으로 연결하는 기술이다. 이제는 HBM 구현에 꼭 필요한 공정이기도 하다. SK하이닉스는 이 TSV에 대한 선제 투자를 기반으로, 2013년 세계 최초로 1세대 HBM을 선보였다.
하지만 HBM은 이후 오랜 시간 시장의 주목을 끌지 못했다.
D램을 수직으로 연결해 건물에 '고속 엘리베이터'를 다는 것 같은 효과를 낸다는 발상은 파격적이었지만 당시 컴퓨팅 시장에서 요구하는 성능보다 지나치게 앞서 나갔다는 평가를 받았다. 제조 난도도 높고, 수율 관리가 어려운 점도 시장의 외면을 받은 또 다른 이유다.
SK하이닉스는 그래도 끊임없이 투자하며 양산 능력을 확보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SK하이닉스의 독자 기술인 '매스 리플로우 몰디드 언더 필(MR-MUF)'은 이런 각고의 노력 끝에 탄생했다.
이 기술은 반도체 칩을 쌓아 올린 뒤 칩과 칩 사이 회로를 보호하기 위해 공간 사이에 액체 형태의 보호재를 주입하고, 이를 굳히는 공정이다. 기존 HBM 기술은 칩을 하나씩 쌓을 때마다 필름형 소재를 깔아주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SK하이닉스가 개발한 이 기술은 공정 효율성이 더 뛰어났다.
SK하이닉스는 연이어 4세대 HBM인 HBM3부터는 더 업그레이드된 '어드밴스드 MR-MUF'을 통해 차별화된 기술력을 이어가고 있다.
D램 여러 개를 쌓는 방식의 HBM은 단수가 높아질수록 칩의 '휨 현상(Warpage)'과 발열 문제에 직면했다. SK하이닉스는 이 신기술을 통해 칩을 쌓을 때 가해지는 압력을 줄였고, 효과적인 열 방출에도 성공했다.
SK하이닉스의 HBM3는 안정적인 양산성을 통해 'AI 시대'의 총아로 급부상했다.
특히 당초 예상과 달리 AI 연산에 필요한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 시장을 SK하이닉스가 독점하며, 메모리 센트릭(메모리가 중심이 되는 컴퓨팅 환경)의 서막을 알렸다.
SK하이닉스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올해 3월 엔비디아향 5세대 HBM 'HBM3E'의 8단 제품의 양산에 나섰고, 지난 9월에는 세계 최초로 현존 최고 성능과 용량을 갖춘 HBM3E 12단 양산에 들어갔다. SK하이닉스가 확보한 HBM 시장 주도권은 최근 메모리 시장에 대한 비관론이 커지는 상황에서도 회사의 차별화 요소로 급부상했다.
SK하이닉스는 차세대 HBM4에서도 주도권을 잡는다는 각오다.
HBM4 개발에서 기존 MR-MUF와 함께 서로 성질이 다른 두 개의 물질을 접착시키는 새로운 '하이브리드 본딩' 공법까지 개발 중이다.
특히 내년에 본격적으로 열릴 HBM4부터는 고객이 원하는 대로 맞춤형 제품을 개발하는 '커스텀(Custom)' 시장으로 전환할 방침이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의 GPU를 독점 생산 중인 세계 1위 파운드리 업체 대만 TSMC와 협업해 시장 지배력을 계속 끌고 간다는 전략이다.
HBM뿐 아니라 AI를 위한 차세대 고성능 메모리 기술 확보에도 주력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AI 시대 이후 데이터 저장 수요 폭증에 대응해, 지난 2021년 인텔의 낸드플래시 사업부(현 솔리다임)를 인수했고, 내년 3월 인수 계약을 마무리한다.
솔리다임은 고용량 AI 서버용 eSSD(기업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 기술에서 강점을 갖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지난 2분기 콘퍼런스콜(전화 회의)에서 "eSSD는 1분기보다 매출이 약 50% 증가하며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갔다"며 "60TB(테라바이스) 제품으로 하반기 시장을 선도해 나가며 eSSD 매출은 지난해 대비 4배 수준이 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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