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고 읽는 건가요?" 외국어 간판 한글 병기 '유명무실'

기사등록 2024/10/08 11:59:44 최종수정 2024/10/08 14:44:15

건물 3층 이하·5㎡ 미만 광고물 치외법권

[청주=뉴시스] 서주영 기자 = 한글날을 하루 앞둔 8일 충북 청주시 청원구의 한 상가 건물에 한글 없이 외국어로만 표기된 옥외광고물 4점이 설치돼 있다. 2024.10.08. juyeong@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청주=뉴시스] 서주영 기자 = 'HOM○○', 'Wine Your ○○', '1943 ROOM ○○', 'FOREST ○○'.

8일 오전 충북 청주시 청원구의 한 번화가. 건물 한 채에 몰려 있는 술집 4곳의 간판에 영어가 빼곡했다.

근처 영화관에는 영어 간판과 함께 'LATEST CINEMATIC' 같은 광고 문구 7개가 모두 영어로 쓰여 있었다.

서원구의 한 요리주점에는 '○霞'라는 한자 간판까지 등장했다. 일상적으로 잘 쓰지 않는 '노을 하(霞)' 자를 스마트폰으로 검색하는 행인들의 손놀림이 분주했다. 인근 퓨전 일식집의 히라가나 간판은 마치 일본 거리를 방불케 했다.

길을 지나던 박모(64)씨는 "도대체 무슨 글자인지 알 수가 없다"며 "젊은 층의 감성을 유발하는 간판 같은데, 나이 든 사람은 왠지 들어가지도 못할 것 같은 분위기"라고 고개를 저었다.

[청주=뉴시스] 서주영 기자 = 한글날을 하루 앞둔 8일 충북 청주시 청원구의 한 상가 건물에 한글 없이 외국어로만 표기된 옥외광고물이 설치돼 있다. 2024.10.08. juyeong@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충북 청주의 거리 곳곳이 외국어 간판으로 뒤덮이고 있다.

외국어 간판을 쓰려면 한글을 함께 표기해야 한다는 규정은 유명무실한 제도로 전락한 지 오래다. 제578돌 한글날을 맞아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8일 기준 청주시에 신고된 옥외광고물은 1만5347건에 이른다. 올해는 216건이 새롭게 등록됐다.

이들 광고물은 건물 4층 이상에 달리거나 면적 5㎡ 이상인 간판이다. 한글을 원칙적으로 쓰되, 외국 문자의 경우 특허청 등록 상표를 쓰지 않는 한 한글을 함께 적어야 광고물 등록 허가가 난다.

나머지는 치외법권 영역이다.

옥외광고물법상 건물 3층 이하나 5㎡ 미만 규격의 광고물은 신고 대상이 아닐 뿐더러 한글 병기 규정도 적용되지 않는다.

알파벳, 한자 등 외국 문자만으로 간판을 달아도 아무런 법적 제재를 받지 않는 셈이다.

시 건축디자인과 관계자는 "청주지역에 신고·허가를 받지 않는 간판이 80%가량 된다"며 "대부분의 간판이 아무런 규제 없이 설치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청주=뉴시스] 서주영 기자 = 한글날을 하루 앞둔 8일 충북 청주시 청원구의 한 상가 건물에 한글 없이 외국어로만 표기된 옥외광고물이 설치돼 있다. 2024.10.08. juyeong@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지자체도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구청별 직원 1명이 구 전체 광고물을 관할해야 하는 탓에 현장 단속은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최근에는 5㎡ 미만 규격의 광고판 대신 외국 문자 자체로만 광고물을 달아 단속망을 더 빠져나가는 추세다.

국회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정준호 의원은 지난달 25일 모든 옥외광고물에 한글 표기 규정을 적용하는 옥외광고물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일부 지자체는 외국 문자 간판을 한글로 바꾸면 보조금을 준다. 수원시는 최근 '아름다운 한글 간판 만들기' 사업을 통해 업소당 최대 200만원의 간판 교체비를 지급했다.

청주시 관계자는 "기존 간판 교체 보조금 사업은 재정 여건상 시행하기 쉽지 않다"며 "정부 공모 등을 최대한 활용해 한글 간판 확산에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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