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엄마' 운운 온라인 성적 욕설에도…'성적 목적' 없으면 무죄

기사등록 2024/10/03 07:00:00 최종수정 2024/10/03 07:28:49

온라인 채팅 통한 성적 욕설에 엇갈린 판결

성적 욕설이라도 '성적 욕망' 없으면 무죄

"성적 욕설 자체가 많다"…명확한 기준 없어

[서울=뉴시스] 김남희 기자 = "○○○의 아들아" "너네 엄마 ○○○○ 횟수야"

2022년 10월 온라인 게임을 하던 A씨는 팀원으로 함께 게임을 한 B씨의 게임 방식에 불만을 느끼고 채팅으로 수 차례 성적 욕설을 보냈다. 이에 B씨는 성폭력처벌법상 통신매체이용음란죄(통매음)로 A씨를 고소했다.

그러나 법원은 A씨가 성적 욕망을 유발하거나 만족시킬 목적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피해자의 어머니에 대한 성적인 표현이 있었지만 일반적인 욕설에도 성과 관련된 표현이 많다는 것이다.

제주지방법원도 2022년 12월 온라인 게임에서 졌다는 이유로 피해자에게 어머니를 운운하며 욕설을 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피해자에게 모욕감을 주기 위한 것이 목적이었고, 그 과정에 성적 표현이 포함됐더라도 성적 욕망이나 성적 만족을 얻으려 한 것으로 단정할 수 없다는 이유다.

통신매체이용음란죄는 다른 사람의 성적 욕망을 유발하거나 만족시킬 목적으로 통신매체를 통해 성적 수치심·혐오감을 일으키는 말을 했을 때 성립된다. 명예훼손·모욕죄와 달리 공연성을 입증하지 않아도 돼 카카오톡이나 게임 채팅으로 보낸 경우에도 처벌이 가능하다.

이에 게이머들 사이에서는 "통매음으로 신고한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쓰일 정도다. 그러나 수사기관에서는 성적 욕설이 광범위하게 쓰이는 현실에서 '성적 욕망'의 여부를 구분하기 쉽지 않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경찰청은 최근 검찰이 불기소로 종결된 통매음 사건이 95건에 달한다며 "성적 표현이 포함된 욕설이라고 모두 성적 목적이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수사 매뉴얼을 공유했다.

◆"넌 성적 매력 없어" 전 여친에 보낸 문자 '유죄'
2018년 대법원 판례는 통매음죄의 적용 범위를 크게 넓혔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2017년 7월 C씨는 연인 관계였던 피해자 D씨와 성관계를 가진 직후 "주말에 산부인과에 가서 성기를 수술하라"고 말했다. 이에 D씨가 "나는 당신보다 성기가 큰 사람과도 1년6개월을 살았다"라고 말하자 "그게 남자한테 할 소리냐. 이제 우리는 끝이다"라며 결별을 선언헀다.

C씨는 이후 약 한 달 동안 22회에 걸쳐 피해자의 성기를 비하하고 성적인 매력이 없다는 취지의 문자메시지를 반복해 보냈다. 판결문에 따르면 C씨는 검찰 조사에서 '성적 만족을 위한 것이었냐'는 질문에 "피해자의 밑을 생각하면 너무 지저분해서 성적 생각이 들지도 않는다"며 성적 수치심과 자존심의 손상, 분노감을 드러냈다고 한다.

1심 재판부는 유죄, 2심 재판부는 C씨를 무죄로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성적 욕망에는 상대방을 성적으로 비하하거나 조롱하는 등 성적 수치심을 줌으로써 자신의 심리적 만족감을 얻고자 하는 욕망도 포함된다"며 원심을 파기하고 유죄 취지로 환송했다. 

'성적 욕망'에 '자신의 심리적 만족감'이 포함된다는 취지다. 이후 수사기관에서는 이 판례를 인용해 피의자를 유죄로 판단하기 시작했다.

◆'너희 엄마' 운운 성적 욕설은 '무죄'…불기소 증가 추세
[서울=뉴시스] 정병혁 기자 = 경찰청.  2024.06.14. jhope@newsis.com
통매음죄가 광범위하게 적용될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제 수사 현장에서는 유죄로 판단하는 경우가 오히려 줄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통매음 사건 불송치율은 2020년 28%, 2021년 25%, 2022년 37.5%, 2023년 43%다.

경찰은 유죄로 봤지만 검찰이 혐의가 없다고 뒤집는 불기소율 역시 증가세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통매음 사건 불기소율은 2020년 24%, 2021년 29%, 2022년 45%, 2023년 48%다.

이에 경찰청은 지난달 24일 개최한 여성·청소년범죄 수사 간담회에서 "최근 불기소 종결된 통매음 사건을 전수점검한 결과, 게임 내 성적 욕설 행위에 대해 대법원 판결을 인용해 송치했지만 '성적 목적'이 없다는 이유로 불기소 종결된 게 95건 확인된다"고 밝혔다.

게임 내에서 성적 욕설을 했더라도 피의자와 피해자가 모르는 사이고, 서로 공격적 언사를 주고 받던 중 발생하는 욕설은 성적 목적이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으므로 유죄 송치에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한 게임 내 분쟁을 수사로 해결하려는 사례가 늘어나는 현실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경찰청 관계자는 "통매음 자체가 넓게 해석될 여지가 있는 죄종이다. 우리나라 욕 중에 성적인 욕이 아닌 게 별로 없어서 쉽게 고소할 수 있기도 하다"며 "경찰 입장에선 법 적용 범위를 무리하게 줄일 수도 없는 노릇이라 상식선에서 성적 목적이 있었다고 생각되면 송치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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