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미니스커트를 입고 하이힐을 신은 화려한 드랙퀸(여장 남자)들. 뮤지컬 킹키부츠가 2014년 초연 이후 10주년을 맞았다. 초연 당시만 해도 국내에는 드랙퀸 캐릭터가 익숙하지 않아 우려가 많았다. 하지만 화려한 쇼와 주인공들의 성장 스토리가 조화롭게 어우러지면서 명실상부 최고의 쇼 뮤지컬로 자리잡았다.
이 작품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폐업 위기의 수제화 공장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초보 사장 '찰리'가 드랙퀸 '롤라'를 만나 80㎝의 특별한 킹키부츠를 만들어 공장을 다시 일으킨다는 내용이다. 현실의 벽에 부딪혀 좌절하지만 꿈을 이뤄내는 찰리와, 편견과 억압에 당당히 맞서는 유쾌한 롤라의 호흡이 공연 성패의 관건이다.
올해 10주년 공연은 시작 전부터 기대감을 모았다. 무엇보다 '쥐롤라'의 덕이 컸다. 유튜브 채널 '빵송국'에서 코미디언 이창호가 롤라를 패러디한 '쥐롤라' 캐릭터가 숏폼 알고리즘을 통해 대중들에게 파고들면서 킹키부츠의 '킹'자도 몰랐던 이들까지 넘버 '랜드 오브 롤라'를 흥얼거리게 한 일등공신이다.
경력직인 만큼 노련함도 돋보인다. 때로는 간드러지게, 때로는 몸집에 맞는 육중한 소리와 연기로 관객들을 들었다 놨다 하는가 하면 편견 어린 시선에 주눅들거나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며 자책할 땐 한없이 애달프게 노래한다.
이 쇼의 백미는 누가 뭐라 해도 공연 말미 '레이즈 유 업'에 맞춰 배우와 관객과 함께 춤추는 시간이다. 조연 드랙퀸 배우 '엔젤'들은 객석으로 내려와 관객 바로 앞에서 신명나는 몸짓을 보여준다.
앞선 넘버들에서 '내적 흥분'으로만 만족해야 해 아쉬웠다면, 이 시간 만큼은 충분히 포효할 수 있다. 공연은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에서 11월10일까지 열린다.
◆★공연 페어링 : 빨간 뚜껑 소주
"이건 육포야. '벌건디'는 아저씨들 잠바떼기 색깔, 권사님들 가방, 할머니가 뜨는 목도리, 팥죽, 선지!"
찰리가 톤 다운 된 버건디색의 부츠를 권유하자 롤라가 한 말이다. 롤라가 원하는 부츠는 그 어떤 색도 아닌 바로 '섹시한 레드'. 버건디도, 핑크도, 퍼플도 아닌 완전무결의 레드를 표현하는 술은 뭐가 있을까? 빨간 뚜껑 소주다!
시골에서 구두나 만드는 삶이 싫어 런던으로 도망치려 했던 찰리는 공장 문을 닫지 않기 위해, 직원들에게 월급을 계속 주기 위해 집마저 저당 잡히고 약혼자한테도 차이는 신세가 된다. 롤라는 무대에선 당당하지만 아버지만 생각하면 가슴이 쓰리다. 아버지는 아들과의 연은 끊으면서 담배는 끊지 못해 폐암에 걸렸다.
20도 짜리 빨간 뚜껑 소주를 마시는 사람을 보면 '저 사람 진짜 어른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현실의 쓴맛에 상처 받은 주인공들이 '나다움'이란 무엇인지 고민하며 진짜 어른이 되어 가는 성장 스토리가 '킹키부츠'의 핵심 줄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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