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전 잡음, 시작 3주 만에 이탈…'필리핀 이모님' 도입 성급했나

기사등록 2024/09/25 06:30:00 최종수정 2024/09/25 08:16:16

가사관리사 2명 소재 파악 못해

통금 등 제약 때문이라는 추측도

고비용·업무범위 등 잡음 안 끊겨

인력 1200명까지 늘리겠다는 정부

주급제 전환 검토…"근본 해결 아냐"

[인천공항=뉴시스] 공항사진기자단 =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필리핀인 가사관리사들이 지난달 6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2024.08.06.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권신혁 기자 = 정부가 저출생 문제 극복의 일환으로 국내로 들여온 필리핀 가사관리사 제도를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시범사업 도입 3주 만에 근무지를 무단 이탈하는 인원이 발생하며 관리 소홀 비판도 제기된다.

25일 고용노동부와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 15일 이탈해 연락이 두절된 필리핀 가사관리사 2명은 현재까지도 복귀하지 않은 상태다.

이탈의 정확한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나, 일단 통금 등의 제약 때문으로 추정되고 있다.

전날(24)일 열린 서울시 외국인 가사관리사 관계자 간담회에서 가사관리사로 근무하고 있는 조안씨는 "자유시간이 필요하고 시간을 어떻게 쓸 지 자율권이 있어야 하는데 제약이 존재한다"며 "저녁 8시까지 일하고 집에 오면 9시고 자유시간은 1시간 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통금시간을 최소 자정까지 늘려줬으면 한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임금이 제때 지급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추측도 제기된다.

가사관리사들은 지난달 6월부터 이달 2일까지 유급교육훈련을 받았는데, 이 기간에 해당하는 교육수당은 201만1440원이다. 이 중 숙소비용 및 소득세 53만9700원이 공제된 147만1740원이 8월30일, 9월6일, 9월20일 3회에 걸쳐 지급됐다. 기본적으로는 매달 20일 지난달 근로에 대한 임금을 지급하는 식이다.

정부는 임금체불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고용부는 "근무시간이 불규칙하고 서비스 수요 변경이 빈번한 서비스의 특성상 근로자별 근무시간을 확인하고 이용대금을 확정하는 데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고 했다.

이 같은 외국인 가사도우미 사업은 첫 장부터 갖은 비판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사실 시범사업 전부터 공개된 업무범위가 모호해 업무 과중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 바 있다. 고용부는 "청소, 세탁 등 육아와 관련된 가사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동거가족에 대한 가사업무를 부수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으나 '부수적'인 가사서비스가 어디까지 의미하는지는 명시된 적 없다.

또 필리핀 가사관리사의 생활비 관련 문제도 지적됐다. 식비, 교통비, 숙소비 등 생활비를 정부 지원 없이 자비로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이들이 머무는 숙소가 '강남'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에서 생활고를 유발할 수 있다고 봤다.
[서울=뉴시스] 김진아 기자 = 지난 24일 서울 강남구 홈스토리생활 회의실에서 열린 서울시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 관계자 간담회에서 김선순 서울시 여성가족실장, 한은숙 고용노동부 외국인력담당관, 외국인 가사관리사 자스민 에리카, 조안 등 참석자들이 대화를 하고 있다. 2024.09.24. bluesoda@newsis.com

아울러 이들을 이용하는 입장에서 비용이 높다는 점도 문제로 꼽혔다. 가사관리사 시급은 1만3700원으로, 최저임금과 4대보험료가 포함된 금액이다. 1일 4시간, 6시간, 8시간 서비스로 나뉘며 하루 8시간, 주 5일 근무를 가정하면 월 238만원이다. 돌봄 비용을 줄여 저출생을 극복하겠다는 취지에서 멀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사업은 저출생 극복을 위한 정부의 주력 사업이다. 이에 저출생고령사회위원회는 내년까지 외국인 가사관리사의 규모를 1200명까지 늘리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또 국내에 체류 중인 외국인 유학생 및 외국인근로자의 아내까지 돌봄 시장에 투입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규모를 키우기 전에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관리 대책을 세밀하게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실제로 고용부와 서울시는 현재 이탈 상태인 가사관리사 2명의 정확한 소재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 한 명은 가족과 연락 중이며 다른 한 명은 연락이 두절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최영미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가사돌봄서비스지부 위원장은 "예견된 일"이라며 "정부 사업의 문제가 그대로 드러난 것"이라고 짚었다.

최 위원장은 "근로계약서 등 현재 서울시와 고용노동부가 어떤 식으로 가사관리사들을 관리하고 있는지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사관리사의 임금 지급 문제도 숙제로 꼽힌다. 현재 정부 및 여당은 외국인 가사관리사에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데다, 일부 근로자들은 주 40시간 근무가 보장되지 않고 당장의 실수령액이 적어 생활고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서울시는 전날 간담회에서 현행 월급제를 주급제로 전환하는 방안에 대해 고용부와 논의할 수 있다고 밝혔다.

고용부 관계자는 "월급을 한 달에 한 번 받을지 두 번 나누어 받을지 근로자들의 선호도를 확인해보고 결정할 것"이라며 "이에 따라 근로 계약 등이 변경될 수 있다"고 말했다.

주급제와 관련해 이규용 한국노동연구원 고용정책연구본부장은 "외국인 근로자의 경우 생활비가 부족해 당일 정산을 주로 선호하기 때문에 (주급제 전환은) 바람직하다"면서도 "근본적인 해결법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이들이 국내에서 숙련도를 쌓아 다른 체류 자격으로 변경할 수 있도록 통로를 마련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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