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환자 피고인 대상 치료 명령 매년 10건↓…"처벌보다 치료 필요"

기사등록 2024/09/22 07:00:00 최종수정 2024/09/22 07:10:32

'치료적 사법' 물꼬는 텄으나 실질적으로 미비

전문가 "치료 감호는 처벌…약물·병원 치료 필요"

[서울=뉴시스] 치매 관련 이미지 (사진=GC녹십자의료재단 제공) 2024.09.21.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오정우 기자 = 알츠하이머 등 국내 치매 환자가 100만명을 넘어선 가운데 치매 등 심신장애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른 피고인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처벌 쪽으로 무게가 실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재발 방지를 위해 형사 처벌 대신 근본적인 치료가 필요하다고 요구한다.

'치매 극복의 날(21일)'을 맞아 뉴시스가 22일 최근 4년간 '치매' '치료할 것을 명한다' '치료 감호'로 검색해 치매를 앓는 피고인이 강력 범죄를 일으켜 재판에 넘겨진 판결문을 전수 분석한 결과, 치매 치료를 전제로 감경되거나 치료 감호를 받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형법 제10조에 따르면 심신장애로 인해 범행 당시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가해자의 행위는 벌하지 않거나 감경된다.

다만 4년7개월간 치매 환자가 강력 범죄를 저지른 77건 가운데 '보호관찰 중 치료를 받을 것을 명한다'고 주문한 경우는 29건에 불과했다. 연도별로는 ▲2020년 8건 ▲2021년 6건 ▲2022년 4건 ▲2023년 9건 ▲올해(1~9월) 2건으로, 매년 채 10건을 넘지 못했다.

상대적으로 민간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것보다는 처벌에 가깝긴 하나 국립법무병원(전 치료감호소)에서 '치료 감호'를 받도록 결정한 경우도 드물다.

치료감호등에관한법률을 살펴보면 심신장애 상태, 마약류·알코올이나 그 밖의 약물중독 상태, 정신성적 장애가 있는 상태 등에서 범죄를 일으킨 가해자 중 '재범의 위험성'이 있고 '특수한 교육·개선 및 치료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면 치료 감호자로 수용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치매 환자 중 감호된 경우는 ▲2020년 6건 ▲2021년 5건 ▲2022년 4건 ▲2023년 9건 ▲올해(1~9월) 1건으로 총 25건에 그쳤다.

이 같은 결과는 '치료적 사법'의 적용에 관한 논의가 물꼬를 텄으나 실질적으로는 미비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치료적 사법은 범행 결과보다는 피고인의 심리적 상태를 분석하고 치료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을 골자로, 심신 상실·미약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른 피고인이 '옥살이'를 하는 대신 치료를 받는 데 의의를 둔다.
 
법정에서 처음으로 언급된 건 2020년 2월이었다. 당시 서울고법은 아내를 살해한 이모(71)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과 보호관찰을 명령하며 "집행유예 기간 동안 치매전문병원에서 치료할 것을 명한다"고 주문했다.

재판부는 "이씨가 칼로 아내를 찔러 죽이긴 했으나, 치매 및 뇌경색으로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에 있었다"며 "자신의 범행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중증의 알츠하이머 치매 증상을 보였다"고 판단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재범 방지 등을 위해 근본적으로 치매 환자에 대한 처벌보다는 치료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립법무병원에서 일했던 차승민 아몬드정신건강의학과 원장은 "치매 환자는 약물 치료가 필수"라며 "치료 감호자로 수용되면 낙상 사고가 발생하는 등 열악한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민간 병원에서의 치료가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곽준호 법무법인 청 변호사는 "알츠하이머 등 치매 환자에 대해 형벌을 가하는 건 사후적인 측면이고 사전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그러면서 "국립법무병원에서의 치료 감호는 치료보다는 처벌에 가까운 개념"이라고 했다.

다만 치료를 전제로 무조건적인 감형으로 이어질 경우 이를 악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곽 변호사는 "강행규정이 생기면 경증 환자가 이를 악용하는 등 독소조항으로 번질 수 있다"며 "판사가 사안별로 판단해야 한다"고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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