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행선만 달리는 의정갈등…"전공의, 내년엔 돌아올까"[혼돈의 의료계②]

기사등록 2024/09/16 06:01:00 최종수정 2024/09/16 07:28:24

전공의 미복귀 7개월…의료공백 내년 지속 우려

"의사·환자 신뢰균열·적대적 분위기에 수련포기"

"PA간호사 합법화 정부 전공의 대체 시도 반감"

"사직 전공의 미국진출 선호…컨설팅 7배 중가"

[서울=뉴시스] 김금보 기자 = 사직전공의들이 지난 8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열린 '사직전공의들을 위한 근골격계 초음파 연수 강좌'를 듣고 실습하고 있다. 2024.09.08. kgb@newsis.com
[서울=뉴시스] 백영미 기자 = 전공의들이 의대 증원과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에 반대해 병원을 떠난 지 7개월 가량 됐지만 돌아올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대다수 전공의들은 정부의 전향적인 입장 변화 없이 복귀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여서 의료 공백 사태가 내년 초까지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16일 의료계에 따르면 지난 2월 의대 증원 사태로 사직한 전공의 1만여 명이 병원에 복귀하지 않으면서 인력난을 겪고 있는 응급실이 곳곳에서 파행 운영되고 있다. 중환자실도 이미 한계에 달했다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의정이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두고 입장차를 좁히지 못해 전공의 공백은 쉽사리 해소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최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의료 공백 사태 해결을 위한 여야의정 협의체 참여를 의료계에  촉구했다. 의대 증원 이해 당사자인 전공의들은 아직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지만 협의체 참여 가능성이 낮다는 전망이 나온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지난 2월부터 전공의 복귀 조건으로 '필수의료패키지·의대증원 전면 백지화' 등 7대 요구안을 일관되게 요구해왔기 때문이다.

한 대표는 "의제 제한은 없다"며 2025학년도 의대 증원도 논의할 수 있다고 했지만 대통령실과 정부, 당 원내지도부는 "수험생들에게 큰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면서 2025학년도 정원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서울의 한 대형병원 A 전공의는 "의대 증원 원점 재검토는 의대 정원을 한 명도 늘리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면서 "환자를 치료할 때 질환의 원인을 객관적으로 진단해야 제대로 된 처방이 가능한 것처럼 필요한 의사 수를 정확히 추계해 의대 증원의 과학적 근거를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사태로 의사와 환자 간 신뢰가 깨진 데다 의사에 대한 적대적인 사회적 분위기를 체감해 전문의 수련을 포기한 전공의들이 적지 않다. 대학병원에 복귀해 수련을 이어가 전문의가 되기보다 일반의로 다른 의료기관에 취업하거나 개원하겠다는 것이다.

의사의 업무를 대신하는 진료보조(PA)간호사의 의료 행위를 합법화한 '간호법'이 지난달 말 국회를 통과한 것도 전공의 복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간호법 시행이 예상되는 시기는 내년 6월이다. 전공의들이 내년 상반기에도 복귀하지 않을 경우 하반기 PA간호사를 현장에 투입해 의료 공백을 메우겠다는 게 정부의 '복안'이다.

전공의들은 "간호법은 전공의를 PA간호사로 대체하려는 시도"라고 보고 있다. 앞서 대한의사협회(의협)는 간호법이 현재의 의료 사태를 해결할 수 없을 뿐 아니라 PA간호사가 합법화되면 전공의들의 복귀를 막게 될 것이라고 여야 의원들에게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직 전공의들은 해외 취업을 준비하거나 동네 병·의원이나 기존 수련병원이 아닌 종합병원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서울의 한 대형병원 A 응급의학과 교수는 "사직 전공의 중 절반 정도는 개원가로 빠지려 하고 있고, 절반 정도는 미국행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의협이 지난 7~8일 서울 용산구 의협 회관 지하 1층 대강당에서 개최한 '사직 전공의 근골격계 초음파 실습 강좌'는 참가 접수를 받은 지 1시간 만에 정원 180명을 모두 채울 정도로 주목 받았다. 강좌에 참가한 전공의들은 "(개원가 선배들이)초음파 프로브(센서) 잡는 자세가 이상하면 바로 오셔서 교정해 주셨다"면서 "맞춤형 지도여서 정말 유익했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김근수 기자 = 지난달 16일 오후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 전공의 생활관이 텅 비어 있다. 2024.08.16. ks@newsis.com
사직 전공의 중 개원 상담부터 기획, 설계, 시공, 홍보, 인허가까지 병·의원 개원 전반을 컨설팅 해주는 업체를 통해 개원하려는 움직임도 있다고 한다.

최근 정부가 의사 면허를 딴 의대 졸업자가 수련 과정 없이 바로 개원하는 것을 막는 '진료 면허' 도입을 추진하고 나섰지만, 법조계에선 개원가를 향하는 전공의들을 막아 서는 것은 헌법에 위배된다는 견해가 나왔다.

강명훈 변호사(법무법인 하정)는 "현재 전공의들은 이미 의대를 졸업한 후 의사 면허를 따 일반의로 개원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데, 이제 와서 개원 면허를 새로 받도록 하는 것은 소급해서 권리를 박탈하는 것으로 위헌이 된다"면서 "헌법에 위배돼 무효"라고 말했다.

최근 1년 새 외국 의대 졸업생들에게 문호를 넓히고 있는 미국 진출을 준비하는 전공의들도 적지 않다. 미국은 15개 주 정부 차원에서 외국 의대 졸업생이 미국 의사 면허 시험(USMLE)을 보지 않고도 의사 면허를 딸 수 있도록 관련 법안을 통과시켰거나 입법을 추진 중이다.

장준희 지메스컨설팅 대표는 "의대 증원 사태 이후 전공의들의 미국 진출 문의가 7배 가량 늘었고, 최근 USMLE를 본격적으로 준비하는 전공의들이 늘고 있다"면서 "시민권이 없으면 진출이 어려운 캐나다와 달리 미국은 취업 비자로 나갈 수 있고 안정적인 의료 환경에서 일할 수 있어 선호도가 높다"고 말했다.

이어 "사태 전에는 군의관이나 공중보건의, 개업의들의 미국 진출 문의가 많았다면 지난 3월부터는 거의 대부분이 사직 전공의들"이라고 했다.

사직 전공의들이 수련병원으로 복귀하지 않으면서 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 등 필수의료 위기 가속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올 하반기 모집에 응한 전공의는 추가 모집에도 불구하고 125명(전체 모집 대상의 1.7%)에 그쳐 매년 3천 명 가량 배출되던 신규 전문의가 내년에 급감해서다. 전공의들은 주로 암·중증·희귀 난치질환 등 고난도 진료를 하는 상급종합병원에 근무해왔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는 "의대 증원이 중단되고 전공의가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 외에는 사태를 해결할 다른 방법이 없다"면서 "추석 이후 응급실 근무 교수와 전문의의 피로도 증가로 응급실 진료가 더 축소될 수도 있고, 의료가 단순히 진료를 보기 어려운 단계를 넘어서 재난 수준에 이르고 있어 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의)결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공감언론 뉴시스 positive100@newsis.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