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명태·과일 언감생심…술 한 병도 사기 힘들어"
가족 얼굴 보려면 통행증 끊어야…없으면 집결소행
2022년까지 탈북민 3만4000여명…올해 6월까지 105명
[서울=뉴시스] 오정우 기자 = "추석 제사상에 올리는 고기 1㎏, 술 한 병을 사려면 한 달 치 월급을 다 써야 해요. 곶감 같은 과일은 언감생심이죠."
지난 10일 서울 동작구 상도동에서 만난 '북한이탈주민(탈북민)' 70대 김모씨는 북한에서 추석이 풍족하지 못했다고 떠올렸다. 평양에서 탈북해 남한에 정착한 지 24년 됐으나 이북의 추석 제사상이 초라했다는 건 또렷하게 기억하는 김씨다. 그래서인지 이번 추석에는 아들에게 만들어줄 음식을 연습한다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한 달 치 월급이 3000~4000원이라고 치면 추석 때는 쌀 1㎏에 5000원 정도 합니다."
김씨는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시기에 탈북한 아들도 북한에서 여전히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다고 전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매일 오후 6~9시에만 전기를 쓸 수 있다"며 "한 달 전쯤 음식을 미리 사서 냉장고에 넣어둘 수 없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추석 때 자주 먹은 음식이 '밤'이라고 했다. 시장에서 사지 않고 동네 산에서 쉽게 캘 수 있기 때문이라고 보탰다.
15일 뉴시스 취재를 종합하면 북한에서의 추석은 우리가 통상적으로 느끼는 '명절' 분위기와 사뭇 다르다.
김씨는 차례를 지내거나 성묘를 하는 건 크게 다를 바가 없지만 '풍족한 음식'이 차려진 차례상은 쉽사리 볼 수 없다고 전했다.
애초에 추석을 '명절 또는 연휴'로 보는 인식 자체가 없다. 북한에서의 추석 명절은 단 '하루'다. 이마저도 1988년에 가까스로 '명절'로 인정됐다.
통일부에 따르면 북한은 이듬해인 1989년부터 추석을 '빨간날'로 인정했다. 다만 제도화된 휴일이라기보다는 당국이 지정하는 대로 바뀔 수 있다는 게 통일부 설명이다.
실제로 북한 당국이 기념하는 대표 명절은 ▲김일성 생일(4월15일) ▲김정일 생일(2월16일) ▲정권 수립일(9월9일) ▲조선노동당 창건일(10월10일) 등으로, 추석이 명절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자신들과 직접 관련이 없는 전통은 단절하겠다는 생각을 분명하게 드러낸 것이다"며 "민족 명절이라고 해서 가족들이 만날 수 있는 상황을 수용하지 않는 현실"이라고 했다.
통행증을 받아도 가족의 얼굴을 보는 데 험난한 과정이 뒤따른다. 김씨는 "전기가 자주 차단돼 기차가 선로 한가운데 서는 등 도착하는 데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고 했다. 힘겹게 고향에 도착하더라도 곧장 관할 경찰서에 도시에 도착했다는 신고를 하는 건 필수. 가족을 볼 수 있는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통행증 없이 고향길에 오른다는 선택지는 사실상 불가하다. 김씨는 "통행증 없이 기차를 탔다가 단속반에 걸리면 집결소로 끌려가는데 최대 5개월 동안 노역장에 있는 것이다"고 했다.
자차로 이동하는 경우에도 중간중간 감시의 눈과 단속 검문소를 피해야 하는데, 이 역시 곱절의 시간이 걸린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가족 중 누군가 죽어야 통행증을 아무 제약 없이 받을 수 있다"며 사실상 귀향이 불가능하다고 부연했다.
때문에 이들은 '편지' 또는 '휴대전화'에 의존해 가족의 소식을 접하게 된다. 다만 편지도 기차를 타고 보내지는 건 매한가지라 휴대전화로만 연락할 수밖에 없다. 휴대전화마저 없는 이들은 가족과 명절을 보낼 수 없다는 의미다.
그렇기에 김씨는 이번 추석을 지난해 입경한 아들과 함께 보낼 계획이다. 뉴시스와 만난 지난 10일에도 근처 도서관에서 레시피가 담긴 책을 빌려 아들에게 손수 만들어줄 음식을 연습할 참이라고 했다. 아울러 김씨는 '탈북민 동지'들과 북한에서 먹을 수 없던 꽃게찜에 소주를 곁들인 '파티'를 벌일 예정이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아들이 최근에 차 한 대를 샀다고 했다"며 "추석 때 아들과 같이 임진각이든, 천안이든, 수십여 ㎞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며 입가에 환한 미소를 띠었다.
한편 약 3만4000명의 탈북민이 지난 2022년까지 남한으로 넘어왔다. 이번 해에는 지난 6월까지 105명이 입국한 가운데 서울 동작경찰서는 서울 동작구 일대에 있는 탈북민 200여 명을 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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