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뉴시스]김정현 기자 = 2025학년도 대입 수시 원서접수가 9일 시작됐지만 의과대학 모집인원을 둘러싼 의료계와 정부의 줄다리기는 여전하다. 안정성을 강조하는 입시 현장에서는 유례가 없는 일이다.
의정갈등이 추석 연휴까지 이어지면서 응급실 의료 대란이 우려되자 정치권에서 발 빠르게 중재에 나섰고, 여·야·의·정 협의체 구성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그러나 의료계는 2025학년도 의대 정원을 재검토하기 전에는 대화에 참여할 의사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당사자 격인 전공의와 의대생 단체가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지만 의대 교수단체와 학부모 단체들은 "그들은 돌아올 생각이 없고 우리는 지지한다"고 전한다.
의료계는 2000명이라는 증원 규모가 무리한 데다 교육 여건이 준비가 돼 있지 않고, 지역·필수의료가 의사 배출 수만 늘린다고 살아난다는 보장이 없다고 지적한다. 타당한 면이 있다. 하지만 내년 대학 전체 신입생 79.6%를 선발하는 수시 전형을 앞두고 의정갈등으로 초래된 혼란을 또 다른 혼란으로 덮자는 이야기다.
의료계 일각에선 '5000만이 어려움을 겪는 응급실 대란보다 수험생 혼란이 더 중요하냐'고 말한다. '전투 하나 이기겠다고 전쟁에서 패하는 길'을 택하겠느냐고 묻고 싶다.
올해 고3은 40만6079명이고, 일반고 대학 진학률(78.4%)을 단순 대입하면 31만여명이다. 여기에 집계가 안 되는 'N수생'까지 수십만 명의 중대사인데, 아무리 정부가 밉더라도 수험생들에게 죄송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가.
양비론처럼 들리겠지만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오게 된 정부의 책임 역시 지적하지 않을 순 없다. 의정갈등이 7개월 가까이 끌어오는 원인은 의료계의 불신감이다.
정부도 이를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국민의힘 국회의원 연찬회에서 '이긴다' 발언으로 설화를 겪은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불신의 벽이 높아 정부의 정책이 왜곡돼 전달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정부는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추진하며 고등교육법에 규정된 대입 사전예고제의 취지를 스스로 무너뜨렸다. 법은 모집인원 등 대학별 대학입학전형시행계획을 신입생이 입학하기 1년10개월에 정하고,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서만 이를 고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정부는 올해 5월 말에 의대 '1509명 증원'을 결정했다. 물론 단서 조항에서 충분히 인정하고 있어서 법적으로 하자가 없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법은 국회를 통과한 사회적인 합의 산물이고, 사전예고제의 대원칙은 수험생의 혼란 예방이 아닌가. 정해진 대입을 바꾸는 일은 신중히 결단해야 하는데, 과연 신중한 결정이었는지 의문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관계 국무위원들은 수험생 혼란을 초래하고 의료계에 큰 상처를 준 데 먼저 사과해야 한다. 그리고 의료계와 2026학년도 의대 입시를 다시 논의해야 한다. 이 또한 수험생 혼란이 불가피한 만큼 더 지체돼서는 안 된다.
◎공감언론 뉴시스 ddobagi@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