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능욕' 범죄…가해자가 피해자 신상 퍼트리기도
"온라인상의 범죄, 사소화해선 안돼…심각한 문제"
"피해자 대책만 있어선 안돼…가해자 먼저 잡아야"
이에 일각에서는 딥페이크 범죄가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딥페이크 음란물이 물리적인 폭력이나 성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는 프레임은 사태를 온라인 상의 문제로 축소시킬 뿐"이라며 "오히려 더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딥페이크 피해 잇따라…"일상 전체가 감시 체제로"
29일 경찰 등에 따르면 최근 텔레그램 등 SNS를 중심으로 딥페이크 음란물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참여 인원이 22만여명에 달하는 텔레그램 채널에 대한 입건 전 조사(내사)에 착수한 상태다.
채팅방은 인공지능(AI)를 활용해 지인의 얼굴을 음란물에 합성해 유통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10대 청소년의 비율이 높으며, 현재 인터넷 상에는 400여개가 넘는 피해 학교 명단이 올라와 있는 상태다.
일부 채팅방에는 피해자의 이름, 나이, 연락처, 사는 지역 등이 공개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피해자 신상이 무분별하게 유포되면서 이전에는 개인 사이에서 벌어지던 범죄가 일대다 형태로 악화되고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 소장은 "지인능욕, 겹지인, 친족성폭력 등은 그것을 경험하는 여성들로 하여금 '내가 포르노로 만들어질 수 있는 가능성'과 세상에 상존하게 만든다"며 "일상 전체가 감시 체제 안에 있고, 주변의 사람들을 신뢰할 수 없게 되는 것 자체가 이미 물리적 폭력과 마찬가지인 것"이라고 말했다.
권김 소장은 "온라인상의 범죄가 오프라인상의 범죄로 번질 수 있다는 것은 온라인상의 문제를 사소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프레임으로 온라인상의 범죄를 사소화해서는 안된다"며 "오히려 물리적 폭력이 '안전하게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방식'으로 진화한 것이다. 독립적으로 심각한 문제"라고도 덧붙였다.
김정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의원도 "(사진이나 영상물을) 편집한 한 사람에 대해서만 피해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가 증가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물리적 폭력과는 다른 형태로 피해가 확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유포되기 이전 단계나, 유포된 이후에도 피해자가 본인의 피해를 명확히 확인할 수 없는 점이 심각한 불안을 야기한다며, 범죄 예방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부연구의원은 "유포 자체의 피해도 크지만, 유포될 지 모른다는 불안으로 인한 피해 비중이 높다"며 "피해자가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가해를 예방하고, 가해를 규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년간 반복된 문제, '꼭 잡을 것'이란 경고 있어야"
피해자 보호 대책 마련도 촉구했다. 피해자들이 SNS를 비공개로 전환하고, 프로필 사진을 내리고 있지만 일시적인 대책만으로는 근본적인 피해를 예방할 수 없다고도 지적했다.
권김 소장은 "피해자들이 자구책으로 SNS 사진을 내리고 있다 가장 현실적인 대책이지만 유일한 대책이어서는 안된다"며 "'꼭 잡을 것'이라는 경고가 있어야 한다. 피해자 보호 대책은 가해자를 검거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김 부연구의원도 "프로필 사진을 내린다고 해서 (범죄 노출) 가능성이 없겠나. 사진 한장 인터넷에 돌아다니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며 "사진을 내리라는 것은 피해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의 온라인 활동을 제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태를 구조적인 문제로 보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수년 전부터 반복돼 온 문제인 만큼, 정부 차원에서 범정부 종합대책 등이 마련돼야 하는 시점이라는 것이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는 "수년간 한국사회에서 계속 문제가 됐다. 성차별과 여성 폭력 문제로 접근하지 않으면 정책적 실패를 할 수밖에 없다"며 "개인의 일탈 행위로 몰아가는 방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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