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증환자 응급실 본인부담률 90%로 상향 추진에
"내원 망설이다 치료 적기 놓칠 수도" 우려 나와
"경증 위한 야간 상담 등 1차 의료 강화해야" 주장
중환자 진료 인력·병상 확충 시급하단 목소리도
진찰 수가 상향도 "근본 대책 아냐" 비판 제기돼
[서울=뉴시스]정유선 기자 = 정부가 응급실 과밀화 문제를 해소하겠다며 경증환자의 응급실 본인부담률을 높이는 대책을 내놨지만, 가격 장벽과 이로 인한 망설임 때문에 중증 환자들이 적기 치료를 놓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중증 환자가 치료 받을 곳을 응급실을 찾지 못하고 병원을 전전하는 '응급실 뺑뺑이' 현상은 응급실 그 자체가 아닌 치료 인력 및 중환자 병상 부족이 근본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28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복지부는 지난 23일 한국 응급환자 중증도(KTAS) 분류기준에 따른 비응급·경증응급환자가 권역응급의료센터 등을 내원한 경우 응급실 진료비의 본인부담률을 90%로 하는 국민건강보험법 시행규칙 일부개정령안을 입법예고했다.
이는 의료공백 장기화로 응급실 운영이 위기를 겪는 가운데 경증 및 비응급 환자가 전체 응급실 이용 환자 중 42%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나자 이들의 이용을 자제하기 위해 마련한 대책이다. 현재 경증 및 비응급 환자의 본인부담분은 50~60%인데 이를 대폭 끌어올리는 것이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선 일반 시민들이 증상의 경중을 판단하기 어려워 하는 현실을 간과한 대책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자신이 경증인지 중증인지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비용 부담으로 응급실 가기를 주저하다 적기에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송기민 한양대 보건학과 교수는 "병원을 쉽게 가는 사람도 있지만 반대로 잘 안 가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실제로는 심근경색인데 소화가 안 되는 거라 생각하는 것"이라며 "(본인부담률을 높이면) 더 망설이게 돼 적기를 놓치는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일반 외래 진료라면 그나마 이야기가 통한다. 몸이 안 좋은데 치료 좀 받으러 갈까 하다가 본인부담금 때문에 자제하니까 건강보험료가 절약된다"며 "그렇지만 응급실엔 그런 규정을 둬선 안 된다. (시급한 시술이나 수술을 할)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할 것인가. 국민 건강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 위원장은 본인부담분을 올리는 대신 "1차 의료기관이 야간에 상담을 받게 하는 등 의료 전달체계를 개편하는 방안을 생각하는 게 맞다"며 "주치의 제도나 환자 등록제 등 기존의 질환과 연계해서 생각할 수 있는 의료시스템을 갖춰 놓는 게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응급실 뺑뺑이 문제가 애초에 경증환자로 인한 응급실 과밀화 때문이 아니라는 주장도 나왔다. 중환자의 경우 응급실에서 응급처치 후 수술실을 가거나 중환자실로 가야 하는데, 병원에서 중환자를 볼 인력과 병상이 없어 환자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는 지적이다.
정 위원장은 지난해 5월 급성 폐쇄성 후두염을 진단 받은 뒤 치료를 위해 응급실을 찾아 헤매다 사망했던 5살 아이의 사례를 언급하며 "응급실에 빈 병상이 없어서 뺑뺑이를 돈 게 아니다. 소아과 당직 의사가 없어서 그랬던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중환자·응급환자들이) 응급실이 비어있지 않아서 못 가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지난 2022년 서울아산병원에서 근무중 뇌출혈로 숨진 간호사도 쓰러졌을 당시 아산병원 내 수술할 의료진이 없어 수술을 받지 못하고 서울대 병원으로 이송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병원에서 응급환자를 볼 수 있는 진료과 인력 및 중환자 병상을 늘리도록 정부가 강제하는 수준으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 위원장은 "아직 외래 수익률이 높기 때문에 한국의 대형병원들이 쉽게 포기를 하지 않는다. 중환자 병상을 늘리려면 정부의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응급의료 인력의 이탈을 막기 위해 응급실 전문의 진찰료 가산율을 100%에서 더 올리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서도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시각이 있다. 애초에 응급의학과 교수들의 임금이 다른 과 봉직의에 비해 낮은 편이 아닐뿐더러, 수가와 교수들의 월급이 직결되는 게 아니므로 이들을 잡아두기 위한 방책이 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송 교수는 "의원급에선 환자가 많아지면 자기 수입이 올라가겠지만 대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들은 환자 수가 아닌 자신의 직책과 경력, 수당 등으로 월급을 받는다"며 "환자를 많이 본다고 월급이 올라가는 체제가 아니므로 근본적은 대책은 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 위원장은 "흉부외과에 전공의들이 지원을 잘 안 하다보니 15년 전부터 교육지원비를 가산하고 있지만 전공의들에겐 그 가산 금액의 한 40~50% 정도만 배정한다. 나머지는 병원이 가져간다"며 "수가를 올리는 것과 의사들의 임금이 올라가는 것 사이에 직접적인 연결성이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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