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사회 중재 이스라엘-하마스 휴전 협상 이끌어
하마스의 창립자 셰이크 야신 도움으로 일인자 올라
국제형사재판소, 전쟁범죄 등 혐의로 체포영장 청구
외신에 따르면 하마스는 31일(현지시각) 텔레그램 계정에 올린 성명에서 하니예가 전날 테헤란에서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하니예는 지난 20년간 하마스 최고 지도자 중 한 명이었으며 최근 수년간 카타르에서 망명 생활을 하면서 하마스 정치 활동을 지휘했다.
하니예는 하마스, 헤즈볼라, 후티 반군 등 이른바 이란의 저항 축 고위 인사들과 함께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후 그의 거처를 표적으로 한 이스라엘의 급습을 받아 경호원과 함께 살해됐다고 이란혁명수비대(IRGC)는 성명을 통해 밝혔다.
하마스의 정치 지도자로서 그는 교착 상태에 빠진 이스라엘과의 휴전 협상을 진두지휘하는 등 하마스 외교의 중심에 서 있었다.
◆ 이스라엘·하마스 휴전 협상 진두지휘
그는 2006년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하마스의 대승을 이끌며 총리에 올랐지만, 이후 선거 결과를 놓고 하마스와 파타(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집권당 격)가 갈등을 겪으면서 해임됐다.
이듬해 하마스가 일방적으로 가자지구 통치를 시작하면서 하마스 정치 지도자가 됐다.
뉴욕타임스(NYT)는 "하니예는 최근 몇 년간 카타르와 튀르키예에서 하마스를 이끌었다. 그는 이집트, 카타르, 미국이 중재한 가자지구에 억류된 인질 석방과 휴전 협상을 지휘해온 인물 중 한 명이다"라고 전했다.
◆권좌에 오르다
하니예는 올해 62세로 1962년 가자지구 가자시티 북부 샤티 난민촌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1948년 현재 이스라엘 영토인 아쉬켈론에 있는 집에서 쫓겨나 난민 신세가 됐다.
하니예는 유엔팔레스타인난민구호기구(UNRWA)가 운영하는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고, 가자지구 이슬라믹 대학에서 아랍 문학을 공부했다.
하니예가 가자지구에서 권력을 손에 넣고 일인자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스승이자 정신적 지도자인 셰이크 야신의 도움이 컸다. 하니예는 과거 그의 개인 비서로 일했다. 둘은 2003년 이스라엘의 암살 표적이 됐으며 야신은 이듬해 이스라엘군에 의해 암살됐다.
그는 당시 가자시티 시파 병원 외곽에 모인 군중에게 "울지 말라"며 "흔들려서는 안 되고 복수를 위해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국제형사재판소 체포 영장
국제형사재판소(ICC)는 지난 5월 하니예 등 3명의 하마스 지도부에 대해 체포 영장을 청구했다.
ICC 검사장은 지난해 10월 7일 발생한 이스라엘 남부 기습 공격과 관련해 하니예 등 하마스 지도자들을 전쟁 범죄와 반 인도적 범죄로 기소하면서 "구금과 처형, 살해, 인질 납치, 성폭행 등 혐의"를 적용했다.
하니예 아들인 하젬, 아미르, 무함마드도 지난 4월 가자지구 북부 알샤티 난민촌으로 이동 중 이스라엘 공습으로 모두 사망했다.
이들은 라마단 종료를 기념하는 이슬람 최대 명절 '이드 알 피트르'를 맞아 친척들을 만나기 위해 이곳을 찾던 중 사망했다. 하니예의 손자 4명도 함께 숨졌다. 하니예는 자녀 13명을 뒀다.
하마스는 지난 6월 가자지구에 있는 하니예 가족에 대한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하니예의 누나와 조카 등 10명이 사망했다고 주장했지만 확인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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