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5일 운영…쪽방촌 주민 및 고령자 300여명 찾아와
'20도' 설정된 에어컨 두 대…물·급식 '리필'해서 먹어
식후 '수박' 등 간식도…주민 "이틀 쉬는 게 아쉬워"
[서울=뉴시스] 오정우 기자, 조유리 인턴기자 = 전날(25일) 서울에 올해 첫 폭염경보가 내려진 가운데, 쪽방촌은 폭염에 직격타를 맞는 대표적 장소다. 2~4평 남짓의 좁은 평수로 다닥다닥 붙어 있어 밀집돼있기 때문이다. 에어컨 등 냉방 시설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탓에 쪽방촌 주민은 폭염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폭염에 시달리는 쪽방촌 주민들에게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피서지가 있다. '여름에는 에어컨, 겨울에는 히터' 덕분에 쪽방촌 주민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는 토마스의 집. 뉴시스가 직접 찾은 26일에도 주민들이 몰렸다.
1993년 2월 문을 연 토마스의 집은 당시 토마스 신부가 쪽방촌 주민 등에게 무료로 급식을 제공하고자 설립한 장소다. 비록 지금은 '자존심비'로 불리는 200원을 내야 하나 오전 11시부터 오후 12시30분까지 1시간30분 동안 300여명이 주 5일 동안 드나든다.
"에어컨도 나오고 200원이라는 싼값에 이렇게 밥을 먹을 수 있으니까요."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쪽방촌 앞 '토마스의 집' 총무인 박경옥(64)씨는 '도깨비 장마'가 소강상태를 맞은 후 쪽방촌 주민이 더 많아진 것 같다고 했다. 박씨는 비록 좌석이 26개밖에 되지 않지만 여름철 폭염에 노출된 쪽방촌 주민과 취약계층이 매일같이 몰려온다고 설명했다. 에어컨도 2대이고, 물과 급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고도 했다.
오전 10시50분께 점심 식사가 제공되기까지 10분을 앞두고 175m 정도 되는 줄이 생겼다. 쪽방촌 주민과 고령자들은 선캡, 볼캡, 버킷햇 등을 쓰거나 우산과 양산으로 더위를 피하기도 했다. 몇몇은 손수건으로 구슬땀을 닦았고 이마저도 없는 이들은 처마 밑에서 손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오전 10시53분. 이들은 '20도'로 설정된 에어컨 두 대 밑에 자리를 잡고 물을 벌컥 마셨다.
식전 기도를 올린 후 이들은 된장국, 묵은지볶음, 닭다리살볶음 등으로 이루어진 점심 식사를 5분도 채 안 돼 해치웠다. 고령자 중 일부는 물을 더 달라고 하거나 식사를 '리필'하기도 했다.
박준호(79)씨는 "간식으로 수박이 나올 때가 가장 좋다"며 "1970년도부터 이곳에 살아서 자주 왔는데 싼값에 이렇게 먹을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이곳을 찾은 지 5년째인 주재복(72)씨는 "매일 나오다시피 한다"며 더워서 힘들지만 더 달라고 하면 더 줄 때가 있어서 좋다고 했다.
김모(85)씨는 "(더운데) 길게 줄 서서 밥 기다리는 게 제일 힘들다"며 빨리 들어가게 해달라고 소란을 피우기도 했다. 김씨는 이곳에서 "배부르게 밥 먹고 올 수 있어 좋다"고 했다.
식후에는 더위를 피하기 위한 간식도 나온다. 10년 전 이곳에서 봉사했다는 이문기(81)씨는 "엊그제는 수박을 주기도 했다"며 "여름철에 가장 좋아하시는 간식"이라고 했다.
오랜 '단골'들은 전과 달리 주 5일 운영하게 되는 부분을 아쉬워하기도 했다. 쪽방촌에 살아 'IMF' 때부터 이곳에서 점심을 해결한 정이섭(84)씨는 식사를 마치고 나오며 "시원해서 좋다"면서 "예전에는 일요일 하루만 쉬었는데 (지금은) 이틀을 쉬는 게 아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집은 너무 더워서 쉬는 날인 목요일과 일요일은 다른 곳에 가서 식사를 하게 된다"고 아쉬워했다.
18년째 자원 봉사 중인 오종찬(75)씨는 "쪽방촌 주민들이 에어컨도 있고 다들 200원에 식사할 수 있어서 좋아한다"면서 "10년 전쯤에는 주중 하루만 쉬웠는데 요즘은 이틀을 쉬는 것 같아 아쉬워하더라"고 했다.
한편 전날 서울에 올해 첫 폭염경보가 내려졌다. 폭염경보는 ▲일 최고 체감온도가 35도 이상이 2일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될 때 ▲급격한 체감온도 상승 또는 폭염 장기화 등으로 광범위한 지역에서 중대한 피해가 예상될 때 중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 발효된다.
기상청은 이날 전국에 폭염특보를 내린 가운데 당분간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최고 체감온도가 35도 내외로 올라 무더울 것이라고 예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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