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이후 1년…초교 교사 5인 인터뷰
"언론 '충격'이라지만…참던 게 터진 것"
"그해 여름 내내 검은 옷만 꺼내 입었다"
"공교육 멈춤…'꿈틀'이라도 하자는 마음"
[서울·세종=뉴시스] 양소리 김정현 기자 = 1년 전 여름, 서울 서이초등학교의 2년 차 교사가 교실에서 목숨을 끊었다. 학부모 갑질에 시달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전국 초·중·고교 교사들은 검정 옷을 입고 거리로 나왔다. 뜨거운 아스팔트에서 외친 그들의 목소리로 '교권 보호 5법'을 탄생시켰다.
그런데 정작 교사의 사망을 불러온 진실이 무언인지는 묘연해졌다. 경찰이 사망 경위와 동기에 대해 4개월 간 조사를 진행했으나 사건이 '혐의 없음'으로 종료되면서다. 교사들에게 서이초 사건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 그러나 '아무도 처벌 받지 않는 일'이 됐다. 그래서 교사들에게 서이초 사건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사건이 벌어진 지 1년 후, 초등학교 교사들의 일상은 어떻게 변했는지 뉴시스가 물었다. 장경욱(가명·25년 차), 김준기(가명·21년 차), 박영진(가명·14년 차), 박재형(가명·10년 차), 김형우(가명·7년 차) 등 5명의 교사가 지난 1년을 되짚었다.
◆"살았다는 생각에 안도하다…웃을 때는 죄스럽기도"
작년 7월18일, 서이초 교사의 사망 사건을 접한 교사들은 생각했다고 한다. "숨기던 게 터졌다".
박재형 교사는 당시 휴직 중이었다. 학부모의 반복적인 교권 침해로 인한 정신적 상처가 원인이었다. 박 선생은 교권 침해를 증명하기 위해 긴 싸움을 마친 상태였다.
병가 중 접한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에 그가 먼저 든 생각은 "내가 독해서 살아남았다"였다. 학부모의 잦은 연락과 그로 인한 피해 등 자료를 모아둔 덕분에 그는 피해를 증명할 수 있었다. 그는 "살아남은 데에 안심했다. 그리고 안도하는 나를 보며 죄스러웠다"고 말했다.
박영진 교사는 추모를 위해 서이초를 직접 찾았다. 박 선생은 "누구 한 사람이 죽어야 목소리가 커지는 굉장한 경험이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이미 아동학대로 신고 당했다가 무고로 고생한 사람들이 많았다. 언론에서는 '큰 충격'이라고 했지만 특별히 드문 일도 아니다. 참던 것이 터진 것"이라고 말했다.
검은색 옷을 챙겨 입고 자신의 교단에서 추모를 이어간 교사도 있었다. 김형우 선생은 "적어도 검은 옷을 입고 출근을 하고 싶었다. 학교에서 근무하는 많은 분이 검은 옷을 입고 출근했다"며 "그해 여름은 항상 검은 옷들만 꺼내 입은 것 같다"고 회고했다.
검은 옷을 입은 교사들은 지난해 7월22일을 시작으로 해가 바뀐 올해 2월까지 토요일 집회에 나섰다. 서이초 교사의 49재를 이틀 앞둔 9월2일 집회에는 역대 최다 인원인 35만 명(주최 측 추산)의 교사가 여의도 국회 앞으로 모이기도 했다.
49재 당일인 9월4일 '공교육 멈춤의 날'에도 교사들은 거리로 나섰다. 교육부는 공무원의 집단행동은 불법이라며 법에 따라 징계하겠다고 밝혔다. 교사들의 분노가 격해지고 나서야 교육부는 "선생님의 마음을 알게 됐다"며 한발 물러섰다.
집회에 참여한 박재형 교사는 "공감하는 아픔에 어떻게 연대하지 않을 수 있겠나. 거리로 나간다고 급여가 올라가는 것도, 신분이 상승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연대했다"며 "초등학교 선생들은 겁이 많다. 그런 사람들이 거리로 나선 데에 나도 놀랐다"고 했다.
김준기 교사는 "'꿈틀'이라도 해보자는 마음이었다"며 "징계한다면 사표라도 쓸 결심이었다"고 했다.
25년 차인 장경욱 교사는 '공교육 멈춤의 날'에 학생들과 교실을 지켰다. 장 선생은 "모두가 학교를 비워 아이들에게 안 좋은 일이 벌어지면 징계를 감수하면서 집회에 간 선생들에 더 부담이 될 것 같았다"며 "바짝 긴장하고 평소보다 더 열심히 수업했다"고 말했다. 그는 "집회에 갔든, 학교에 있었든 전국 모든 선생들이 다 그랬을 것"이라고 했다.
◆'교권보호 5법'이 생긴 나라…그럼에도 "언제든 신고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
서이초 교사의 죽음과 교사들의 분노는 '교원지위법' '초·중등교육법' '유아교육법' '교육기본법', 그리고 '아동학대처벌법' 등 '교권보호 5법' 개정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법 시행으로 교권이 보호되고 있다고 느끼는 교사는 10명 중 1~2명뿐이다. 여론조사전문기관 한길리서치가 지난 8일 발표한 조사에서 서울시 내 교사 93.7%는 '법으로도 교권이 보호되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큰 이유 중 하나는 시도 때도 없이 교사의 일터로 침입하는 학부모를 막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박재형 교사는 "학부모 재교육도 필요하다. 자신의 어떤 행동이 교권을 침해하는지 자각할 수 있어야 한다"며 "학교라는 공간은 교원 자격증을 갖고 있는 사람이 교육의 주체다. 학부모 의견도 중요하지만 자칫 사공이 많은 배처럼 교실의 교육관이 흔들릴 수도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여전히 살아있는 '정서적 아동학대' 법도 교사들에는 공포다. 교실에서 이뤄진 교육이 언제 아동학대로 돌변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교사들은 아이들의 잘못된 행동에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준기 교사는 "학교에 정서적으로 불안한 학생이 있었는데 그 친구를 함부로 건드리거나 제재만 해도 아동학대로 신고가 가능하더라. 학생이 부끄러웠다는 이유로도 '정서적 학대'가 성립된다"며 "학생과 학부모의 무기가 됐다"고 했다.
김형우 교사는 정서적 아동학대 조항을 놓고 교사들끼리는 '학생 기분상해죄'라고 자조한다고 말했다.
그는 "잘못된 행동을 지적 당했을 때 기분이 좋은 사람이 어디 있나. 그럼에도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 그런데 '정서적 아동학대' 조항은 정당한 교육마저도 악의를 갖고 신고하기에 너무 쉽고 편하다"고 했다. 이어 "아동학대 신고 요건을 구체화했으면 좋겠다. 말도 안 되는 신고는 경찰 조사가 이뤄지지 않도록 만들길 바란다"고 말했다.
◆"다시 태어나도 선생님…더 나은 교실되길"
긴 시간 인터뷰를 마치며 교사들에 물었다. '다시 태어나서 직업을 고를 수 있다면 그 때도 교편을 잡겠냐'고 말이다.
김형우 교사는 고민도 없이 "그렇다"고 답했다. 그는 "여전히 교실에서 뿌듯함을 느낀다"며 "교사는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직업"이라고 했다. 다만 "다시 태어날 때는 미래니까 지금 이 상황이 더 나아졌고 덜 힘들지 않을까. 그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김준기 교사는 "교실의 99%는 좋은 아이들"이라고, 장경욱 교사는 "가시밭길이라도 또 가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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