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이태성 기자 = "우리 자식이, 우리 아저씨(남편)가 그런 일을 당할 수도 있었던 건데…"
"사고 난 뒤에 제가 제일 먼저 확인한 게 우리 직원들 단톡방(단체채팅방)이에요. 다들 무사한지 걱정돼서."
"(헌화한 뒤) 여기 상가에서 일하시는 분들 다 똑같은 마음이에요. 바로 옆이니까 더 놀랐죠."
지난 1일 늦은 오후 서울 시청역 인근 교차로에서 9명이 숨지고 4명이 다치는 대형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현장에서 만난 시민들은 모두 평범한 일상 속 공간에서 발생한 이번 사고에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피해자들이 퇴근 후 승진을 축하하기 위해 모였다가, 저녁 식사 후 직장으로 돌아가던 중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에 일부는 '그 자리에 내가 있었을 수 있었다' '이태원 참사가 떠오른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발생한 이번 사고는 도미노처럼 또 다른 연쇄작용을 낳고 있다. 시민들 사이에서 일상 속 사고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역주행 사고를 낸 운전자에 대한 분노가 들끓고 있다.
특히 사고 운전자가 68세 고령인 데다 사고 이후 급발진을 주장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시민들의 분노는 더 커졌다.
이러한 분노를 동력으로 삼아 사고의 원인을 규명하고 재발을 막기 위한 논의를 이어가는 것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자칫 고령운전자에 대한 혐오가 확산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이미 온라인상에서는 '급발진은 고령운전자 차에서만 발생하느냐'는 비아냥과 함께 '고령운전자의 면허를 모두 박탈해야 한다'는 식의 과격한 주장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사고의 원인을 속단해선 안된다고 지적한다. 한 자동차학과 교수는 시청역 역주행 사고에 대해 "운전자가 운수업에 종사하고, 68세이기 때문에 초고령자는 아니다"며 "기기 조정이나 판단 능력이 떨어지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고령운전자가 사고를 냈으니 모든 고령자의 운전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는 식의 단순한 접근보다는 앞으로의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다양한 안전장치를 모색하는 건설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최근 일본 정부의 발표처럼 자동차 액셀과 브레이크를 실수로 잘못 밟아 일어나는 사고를 막는 안전장치 탑재를 의무화한다거나, 자동비상제동장치(AEBS)를 도입하는 운전자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식의 접근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나도 언젠가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만큼 무서운 건, 나 역시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설령 개인의 실수가 발생하더라도 2중, 3중의 보호장치를 통해 사고를 막아내는 것이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보다 근본적인 해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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