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 통계 "전체 청년인구 5%가 고립·은둔"
"직장 내 위계적 문화로 퇴사…재취업 엄두 안나"
[서울=뉴시스] 조성하 기자 = #국내 4년제 대학에서 문예창작학과를 전공한 정모(29·남)씨는 최근 'ㅆ' 홍보대행사로부터 최종 합격 통지를 받고도 출근하지 않았다. 이미 정씨는 졸업 후 중소 홍보대행사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지만, 위계적인 기업 문화와 반복되는 상사의 폭언에 지쳐 1년여 만에 퇴사했다.
#퇴사한 지 3개월이 지난 현재, 정씨는 구직활동을 멈춘 채 쿠팡 물류센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정씨는 "열정 있게 서류를 제출하고 나서도 면접일이 막상 닥치면 무서워졌다"면서 "합격했다는 연락을 받고도 안 간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퇴사 후 재취업을 준비하는 대신 취업에 대한 부정적 경험을 가진 청년들이 '은둔'을 택한 사례가 늘고 있다.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공개한 '2023년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의 고립·은둔 청년은 전체 청년 인구의 5%에 달하는 54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가장 큰 고립·은둔 이유로 이들은 취업 경험에서의 실패 등 부정적 경험을 꼽았다.
실제 뉴시스가 퇴사 후 3개월 이상 쉬고 있거나 쉰 경험이 있는 청년들의 사례를 살펴본 결과 ▲첫 취업 준비와 실패 과정에서 느낀 압박감·피로감이 컸고 ▲취업한 일자리가 맞지 않았으며 ▲퇴사 뒤 다시 취업을 준비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게 이들이 재취업을 망설이는 주된 이유였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한 뒤 2022년 중견기업에 취업한 유모(26·남)씨도 입사 1년 만에 퇴사를 한 뒤 쉬고 있다. 유씨는 "졸업 직후 바로 취업했는데, 막상 입사한 곳은 회식이 2, 3차까지 자주 강제되는 등 수직적 분위기라 나와 맞지 않았다"면서 "다른 회사도 비슷할 것 같아 다시 취업에 도전하기에는 열정이 많이 사라져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서울 시내 한 전문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했다는 편모(28·여)씨도 졸업 이후 1년 동안 수차례 입사지원 끝에 스타트업 컨텐츠디자인팀에 들어갔지만, 정작 일자리가 본인과 맞지 않아 올초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편씨는 "평일 출근 5일 중 4일이 야근이었지만 야근 수당도 주지 않을 만큼 추가 근무가 너무 당연했다"면서 "(재취업 후) 또다시 워라밸이 못 지켜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끔찍하다. 이 업계에서는 어쩌면 이게 당연한 것인데,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라 이렇게 해서까지 다녀야 하나 싶다"고 하소연했다.
편씨는 한동안 다시 취업을 준비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면서 "퇴사 직후 첫 두어달 동안은 입사 지원 자체를 안 했다"고 전했다.
조직생활 적응에 한계를 느끼고 전문직 준비로 선회한 청년도 있었다.
서양어를 전공한 뒤 법률회사에서 2년 간 근무했던 김모(28·여)씨도 지난해 일을 그만뒀다. 김씨는 "지난해 11월부터 한의대에 가기 위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면서 "조직에서 고생해 봤자 노후 대비도 어려운데 한의사는 늙어서도 계속 돈을 벌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장점"이라고 밝혔다.
'재취업 포기-은둔 청소년' 현상에 대해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금 청년세대는 과거 세대보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대학생활을 한 뒤 완충지대 없이 바로 사회로 진입한다"면서 "대학이 주는 자유로움과 직장의 위계적인 문화에서 오는 격차가 크고, 거기에서 실망감도 느끼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어 "또 과거세대보다 경력에 있어서 표준적인 부분들이 많이 약화됐다"면서 "'졸업 후 바로 취업해야 한다', '공백기가 없어야 한다' 등의 관념이 많이 약화되니 경력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다소 편안하게 그런 선택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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