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공백 100여 일…'새우등'은 너무 아프다[기자수첩]

기사등록 2024/06/07 10:47:24 최종수정 2024/06/07 11:28:52

[서울=뉴시스]송연주 기자 = 40대 김씨의 남편은 수술 마스크, 수술 장갑 같은 치료재료를 취급해 병원에 납품하고 있다. 순탄하던 김씨의 사업은 최근 위기를 만났다. 의대 증원 갈등으로 경영난에 봉착한 상급종합병원들이 의약품과 치료재료 등의 대금 결제를 미루면서 배우자의 사업에 자금이 안 돌고 있는 것이다. 수술 자체가 줄면서 납품 물량이 대폭 줄어든 건 두말할 것도 없다.

김씨는 그나마 자신의 배우자는 대금 결제를 3개월 연장한 병원이 주거래처가 아니어서 버틸 수 있는 거라며, 주거래처인 다른 사업자들은 이대로 가다간 얼마 못 버텨 도산할 수도 있다고 혀를 끌끌 찼다. "(의정 갈등이) 언제 끝나냐"를 몇 번이나 되물은 김씨는 어느날 갑자기 자신의 가정에 닥친 위기에 겁먹고 있었다.

정부의 의대 증원으로 촉발된 의료 공백이 100일을 훌쩍 넘었다. 정부와 의료계의 양보없는 줄다리기는 대표적 국공립병원인 서울대병원 교수들의 전면 휴진 결정으로 이어졌다. 고래 싸움의 당사자인 상급종합병원도 심각한 경영난에 봉착했다.

상급종병이 받은 타격은 규모가 작고 힘이 약한 곳에는 더 거대한 압력으로 흘러내린다. 어떻게든 병원에 제품을 납품해야 하는 입장의 김씨 배우자는 갑자기 몇 개월이나 대금 결제를 미뤘다고 해서 병원에 항의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병원의 상황 또한 여의치 않다.

대형병원 매출이 절대적인 의료기기 업계도 곡소리를 내고 있다. 전형적 소기업이 많은 산업구조의 의료기기 업계와 의약품 유통업계는 매출 감소 및 의료기관 대금 결제 지연으로 직격탄을 맞았다.

환자들은 어떤가. 수술 취소 후 무기한 대기하는 일이 속출하고 있고 외래진료 취소 사례도 나오고 있다. 제 때 치료가 무엇보다 중요한 중증 암 환자도 보호받지 못하는 모습이다. 최근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가 췌장암 환자 281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10명 중 6~7명은 진료 거부를 겪었다고 응답했다. 절반 이상(51%)은 치료가 지연됐다고 했다. 6일 서울대의대·서울대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가 필수 부서를 제외한 전면 휴진을 결정하면서 환자들의 우려는 더 커졌다.

병원 청소노동자들도 병원의 근로시간 단축 조치로 급여 손실과 생활고를 호소하고 있다.

의대 증원의 필요성은 오랫동안 국민의 공감대가 형성돼왔던 현안이다. 그러나 정책 추진 단계에서 협상과 소통의 첫 단추를 잘못 뀀으로써 사회 곳곳에서 예측하지 못한 출혈을 일으키고 있다.

이쯤 되면 필수의료를 살린다는 목적의 이번 정책이 그 본질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게 맞긴 한 건지 의구심을 자아낸다. 전공의들이 떠나기 전에 의료수가 체계 등 의료개혁 패키지에 대한 구체적 대안이 제시됐어야 하는 게 아닌가. 급한 정책 결정의 결함이 아픈 사람들의 과한 희생을 요구하는 건 아닌가.

의정 갈등으로 터져나가는 새우등의 현실을 묵시 말고 지금이라도 교통정리에 나서야 한다. 국민과 산업계의 불안을 누그러뜨릴 방안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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