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비혼 단신 생계비' 대립…"최저임금 심의에 활용 부적절"(종합)

기사등록 2024/06/04 15:18:07 최종수정 2024/06/04 16:02:12

최임위 2차회의…'비혼 단신 근로자 실태 생계비' 관련 격돌

노동계 "생계비보다 낮은 최저임금 안돼…가족 생계는 어쩌나"

경영계 "고임금계층까지 포함…최저임금 대상 수치 활용해야"

정보 공개 범위 두고 대립도…"회의 전 언론 유출 매우 유감"

[세종=뉴시스] 강종민 기자 = 지난달 21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제1차 전원회의에서 류기섭 근로자 위원의 발언을 듣던 류기정 사용자 위원이 얼굴을 만지고 있다. 2024.05.21. ppkjm@newsis.com

[세종=뉴시스]권신혁 기자 = 내년도 최저임금을 심의하는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 제2차 전원회의가 열린 가운데, 노사가 최저임금 심의의 기초 자료인 '비혼 단신 근로자 실태 생계비' 조사 결과를 두고 대립했다.

최임위는 4일 2차 전원회의를 열고 지난 1차 회의 결과와 생계비전문위원회 및 임금수준전문위원회 심사 결과를 보고받았다.

노사는 실태 생계비 조사 결과에 대해 이견을 보였다.

최임위 생계비전문위원회는 지난달 30일 '비혼 단신 근로자 실태 생계비' 조사 결과를 논의했다. 비혼 단신 근로자 실태 생계비는 지난해 통계청 가계동향조사 결과를 토대로 한국통계학회가 분석한 것으로, 2023년 기준 월 245만9769원이다. 올해 최저임금 9860원 기준 209시간 일했을 때 환산되는 206만740원은 비혼 단신 근로자 실태 생계비보다 약 39만원 적은 수준이다.

사용자 측은 해당 수치가 심의를 위한 자료로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사용자위원 대표 류기정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전무는 "비혼 단신 근로자 월평균 생계비 246만원은 월 소득 700~800만원에 달하는 고임금 계층의 소비까지 포함해서 산출된 평균값"이라며 "최저임금 심의를 위한 수치로 활용하기는 적절하지 않다. 정책 대상인 최저임금 근로계층의 생계비 수치를 활용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노동계의 의견은 달랐다. 근로자위원 간사인 류기섭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사무총장은 "미혼 단신으로 살아가는 노동자의 생계비가 물가 상승률을 고려하면 250만원을 넘어가고 있는데, 복수의 가구 구성원의 생계를 책임지며 살아가는 노동자도 수없이 많다"고 했다. 또 "올해는 반드시 최저임금 노동자 가구가 살아갈 수 있는 수준으로 대폭 인상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근로자위원인 이미선 민주노총 부위원장도 "최저임금 산정 기준이 되는 비혼 단신 노동자의 생계비 보다 낮은 금액으로 최저임금이 결정되는 건 문제"라며 "비혼 단신 노동자가 최저임금으로 결혼도, 아이 낳을 엄두도 내지 못할 문제를 어떻게 할지 시급하게 검토해야한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고승민 기자 =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과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 등 노동단체 회원들이 지난 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 계단에서 최저임금 차별금지법 국회 선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4.06.03. kkssmm99@newsis.com

노사는 최저임금 수준과 업종별 차등적용을 놓고 대립하기도 했다.

류기섭 위원은 "업종별 차별지급과 같은 사회 갈등만 야기하는 논의는 걷어내고 하루빨리 최저임금 제도의 취지에 맞는 올바른 심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미선 위원은 3일 양대노총 등 노동계가 국회에서 최저임금 차별금지법을 선포한 것을 언급하면서 "모두가 한 목소리로 업종별 구분적용 규정을 삭제해야 한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특정 업종만 낮은 최저임금을 적용하면 인력난이 악화되고 해당 업종의 경쟁력만 낮추게 된다"라고 우려를 표하면서 "최임위가 할 일은 실제로 노동자임에도 자영업자로 분류된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에 대한 최저임금 적용을 위해 현실적인 대책을 세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노동계의 주장에 사용자 측은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적용과 최저임금 동결을 촉구했다.

특히 지난 회의에서 언급된 배달·택배 기사 등 도급근로자 최저임금 적용에 대해서도 인정될 수 없다며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사용자위원 간사인 류기정 위원은 "특고·플랫폼 종사자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닌 개인사업주로 최저임금 적용의 대상이 아니다"라며 "최임위에서 이들에게 별도로 적용될 최저임금을 논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도급근로자의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주체는 최임위가 아니라 고용노동부 장관과 법원"이라며 "현 시점에서 최임위가 이들에 대한 별도의 최저임금 결정하는 건 법의 권한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사용자 위원인 이명로 중소기업중앙회 인력정책본부장은 "지불능력이 취약한 소상공인과 소기업을 고려해야 한다"며 "최근 중소기업중앙회가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61.6%가 내년도 최저임금 동결을 원한다고 응답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만약 (최저임금을) 인상하더라도 업종별 구분적용은 반드시 실현돼야 한다"며 "상대적으로 높은 최저임금 수준, 일부 업종에서 높게 나타나는 미만율, 부진한 경영 실적 등의 지표상 구분적용 논의의 필요성이 커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이날 회의에선 회의 내용 등 정보 공개 범위에 대해서도 논의가 이뤄졌다.

노동계는 지난 회의에 이어 더 많은 정보가 공개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지난 1차 회의 당시 근로자위원인 이미선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현재 최임위는 모두발언을 제외한 모든 과정이 비공개인데,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최임위가 되도록 공개회의로 전환해야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래야 이 귀중한 시간에 노동의 가치를 폄하하는 발언과 행동이 사라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정훈 근로자위원도 "저희가 국가보안을 다루는 건 아니지 않느냐"며 공개의 범위를 넓힐 것을 요청했다.

이날 2차회의에서도 노동계는 이 같은 요구를 이어갔으나, 경영계에서는 공개 범위 확대에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특히 사용자위원들은 최임위 심의 자료가 언론에 보도된 것과 관련해 불쾌감을 드러냈다.

류기정 위원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최저임금 심의의 기초 자료인 생계비 통계가 전원회의에 보고되기도 전에 언론에 유출됐다. 매우 유감스럽다"며 "기존에 합의된 원칙과 관행들을 존중하면서 최임위에 부여된 본연의 역할에 집중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공개 범위에 관한 양측의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다음 회의에서 다시 이 문제를 논의하기로 결정했다.

한편 제3차 전원회의는 오는 11일, 제4차 전원회의는 1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각각 개최될 예정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innovation@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