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강주희 기자 = 젊은 시절 화가를 꿈꿨던 히틀러는 예술가적 기질을 지닌 인물이었다. 수천 점의 그림을 남겼고 상업 화가로 돈을 벌었다. 하지만 빈 미술 아카데미에 두 차례 낙방 하는 등 특출한 재능을 뽐내지 못했다.
정치에 입문한 뒤 히틀러는 그림, 건축, 음악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많은 예술가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에 매료돼 있었고 예술을 통해 유럽을 재건하겠다는 욕망을 버리지 않았다.
특히 바그너의 음악은 히틀러에게 강력한 영감의 원천이 됐다. 그는 바그너의 오페라를 통해 독일 아리아 민족의 우월성을 강조하고자 했고 나치 이념을 홍보하는 도구로 삼았다.
반면 자신의 취향에 맞지 않는 예술은 철저히 탄압했다. 큐비즘, 다다이즘, 표현주의 등을 이른바 '타락한 예술'고 간주하고, 바실리 칸딘스키와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와 같은 화가들을 배격했다.
이 책 '히틀러와 미학의 힘'은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킨 독일 나치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의 예술가적 측면을 분석했다.
미국 전직 외교관이자 문화 역사가인 저자는 히틀러가 독일 국민의 마음을 매료시킨 힘을 예술적 재능으로 설명한다.
저자는 히틀러가 예술을 권력의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사용했음을 주목했다. 히틀러의 대중 선동 연설, 나치 집단의 뉘른베르크 당 대회와 장대한 퍼레이드 등을 좇다 보면 예술과 전쟁 사이의 역설을 마주하게 된다.
"거대하고 입체적인 무대 효과가 히틀러의 특기였다. 여러 해 동안 그는 독일 대중에게 퍼레이드, 페스티벌, 헌정식, 기념식, 경례, 횃불 행렬 같은 정교한 프로그램을 제공했다. 그는 공연의 세부 사항들을 직접 챙겼다. 압도적인 시청각 효과, 수천 개의 깃발과 기치. 이 모든 것들로부터 연타 당한 군중은 거의 넋이 나가버렸다. (1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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