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의대생 없이 "단일화 목소리"
"당사자 전공의 목소리 많이 나와야"
정부 말뿐인 대화 "원점 재검토 안돼"
23일 의료계에 따르면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전날 서울 용산구 의협 회관에서 대한의학회,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전국 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이 참석한 가운데 비공개 긴급 회의를 열었다. 이날 회의에는 임현택 의협 회장을 비롯해 이진우 대한의학회장, 김창수 전의교협 회장, 최창민 전의비 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회의는 의대 증원을 막기 위한 대응책을 논의하기 위해 열렸다. 정부가 오는 30일 의대 모집 인원을 반영한 내년도 대학별 신입생 정원을 확정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의료계의 대응 수위에 관심이 모아졌다.
그러나 회의가 끝난 후 의료계는 "단일화된 목소리를 내겠다"는 등 기존 입장을 반복했다.
성혜영 의협 대변인은 "의협, 전의비, 전의교협, 의학회가 현안에 대해 단일화된 의견을 내는 것에 동의했고, 의료계는 의대 증원 원점 재논의를 전제로 언제나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전공의와 의대생은 의료계 4개 단체와 동일한 '의대 증원 원점 재검토'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단일화된 목소리를 내겠다"는 결론을 낸 이날 회의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는 필수의료 패키지와 의대 2000명 증원 전면 백지화, 의사수급 추계 기구 설치, 수련병원 전문의 인력 채용 확대, 불가항력 의료사고 부담 완화,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부당한 명령 전면 절회 및 사과, 업무개시명령 폐지 등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또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협회(의대협)은 지난 21일 입장문을 내고 "의료 현장의 의견이 반영되는 논의가 원점에서부터 이뤄져야 한다"며 ‘증원 원점 재검토’ 없인 수업에 복귀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박단 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전 세브란스병원 응급의학과 전공의)은 전날 회의에 참석하는 대신 SNS를 통해 정부가 '전공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내놓은 '전문의 중심 병원 구축' 대책을 비판했다.
박 비대위원장은 지난 22일 페이스북에 "세브란스병원 전공의만 해도 800여 명인데, 병원당 전문의를 2명 더 뽑아서 뭘 어쩌겠다는 것이냐"면서 "정부는 전문의 인력 채용 강화 등에 대한 구체적인 재원이나 정책은 내놓지 않고 있고, 오히려 진료보조인력(PA)을 확대하는 등 앞장서서 불법을 자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전문의 중심 병원이 아닌 진료지원인력 중심의 병원을 구축하려는 것이 아닌지 의문이다"고 지적했다.
전날 긴급 회의에서 논의된 '정기적인 연석 회의 개최'가 그나마 의료계의 새로운 의대 증원 대응 방안인데, 전공의와 의대생의 참여는 불투명해 이마저도 '알맹이 없는 대책'에 그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서울의 주요 대학병원 A 교수는 "대표성을 갖는 전공의들의 목소리가 더 많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도 의료계와 언제든지 대화에 나설 의사가 있다고 밝히면서도 대화의 전제 조건으로 '의대 증원 원점 재검토'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여서 '말 뿐인 대화'라는 비판을 피해가기 어렵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전날 브리핑에서 "대화 준비가 돼 있다는 메시지가 나왔다니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다"면서도 "정부는 대화 전제 조건으로 '원점 재검토', '1년 유예'는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한편, 교육부는 의대 증원을 반영한 '2025학년도 대입 전형 시행계획 변경 사항'을 오는 30일 확정·공개할 방침이다.
의대생을 자녀로 둔 부모 A씨는 "대학 총장들은 의대생 복귀나 향후 교육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 없이 증원을 위한 학칙 개정에만 골몰하고 있다"면서 "학생들의 학습권이 침해 당하고 있는데, 이런 피해를 고스란히 학생과 학부모가 져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현재도 교육 여건이 열악한데 증원될 경우 제대로 된 교육이 가능하겠느냐"면서 "교육의 질을 보장하기 위한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대안이 있을 때에만 증원안이 통과돼야 한다. 주먹구구식 정책에 재학생들이 실험용 마루타가 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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