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교제살인②]"살인 자체가 목적"…더 치밀·잔혹해지는 범행

기사등록 2024/05/11 07:00:00 최종수정 2024/05/13 10:34:00

범죄 자체가 목적 '표출적 범죄'…잔혹성↑

최근들어 점점 더 치밀해지는 경향도 보여

"경동맥이 급소란 의학적 지식, 범죄에 활용"

"범행 후 '약' 언급 특이"…심신미약 주장하나

[서울=뉴시스]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여자친구를 흉기로 살해한 20대 의대생 소식이 알려지면서 교제살인 문제의 심각성이 대두되고 있다. 연인 등 친밀한 관계에 의해 살해되는 피해자가 3일에 1명꼴로 생겨나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교제살인은 분노가 극에 달한 상태에서 살인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해 잔혹성이 더 짙을 수밖에 없으며 최근엔 점점 치밀해지는 경향도 보인다고 분석했다. 2024.05.11. (그래픽=안지혜 기자) hokma@newsis.com


[서울=뉴시스]홍연우 오정우 우지은 기자 =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여자친구를 흉기로 살해한 20대 의대생 소식이 알려지면서 교제살인 문제의 심각성이 대두되고 있다.

연인 등 친밀한 관계에 의해 살해되는 피해자가 3일에 1명꼴이라는 통계가 나올 정도다.

이 가운데 전문가들은 교제살인이 분노가 극에 달한 상태에서 살인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잔혹성이 더 짙을 수밖에 없고, 최근엔 점점 치밀해지는 경향도 보인다고 분석했다.

11일 경찰에 따르면 의대생 최모(25)씨는 지난 6일 서울 서초구 한 건물 옥상에서 동갑내기 여자친구 A씨에게 흉기를 휘둘러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최씨는 A씨의 목 부위 등을 여러차례 공격해 살해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피해자 부검 결과에 따르면 사인은 '자창(찔린 상처)에 의한 실혈사'로 확인됐다.

당초 그는 투신 신고로 출동한 경찰에게 구조된 후 인근 파출소로 이동했다. 최씨는 처음에 '왜 투신하려 했는지' '다른 소지품은 없는지' 등 경찰에 질문에 침묵하다가 부모와 통화 후 "(옥상에) 평소 복용하던 약을 두고 왔다"고 했다.

이후 경찰은 해당 빌딩 옥상에서 최씨의 소지품이 든 가방과 피해자의 시신을 발견했다. 이 과정에서 혈흔이 묻은 최씨의 옷과 흉기 등 증거품을 발견한 경찰은 살인 혐의로 최씨를 긴급 체포했다.

최씨는 범행 당일 집 근처인 경기 화성의 대형 마트에서 흉기를 구매했으며, 범행 후 옷을 갈아입은 것으로도 조사됐다.

이후 최씨는 지난 8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우발적 범죄가 아닌 계획범죄였단 사실을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이 여자친구에 대한 집착과 분노를 기반으로 한 '표출형 범죄'이자 의학지식을 활용한 치밀한 계획범죄라고 진단했다.

이웅혁 건국대학교 경찰학과 교수는 "(피해자의) 이별 통보 후 이를 받아들이는 듯하다 다시 '없던 걸로 하자'며 회유 및 통제, 협박 등을 하는 과정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며 "피해자가 팔을 다쳤다는 일부 언론 보도 역시 그 과정에서 폭력을 행사한 게 아니냐는 추측이 가능하다. 이는 교제살인에 이르는 공통적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가까운 사이였던 연인의 이별 통보를 수용하지 못해 분노에 휩싸여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잇따르는 교제살인의 수법이 유독 잔인한 이유도 여기서 찾았다.

이윤호 동국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교제살인은 범죄 그 자체가 목적인 '표출적 범죄'(expressive crimes)로 본다"고 했다.

이어 "예를 들어 강도살인의 경우, 살인은 강도라는 다른 범죄 행위를 저지르기 위한 수단이다. 그런데 표출적 범죄로서의 교제살인은 폭발하는 감정을 표출하는 행위이기에 더 잔인해지는 특성을 보인다"고 했다.

배상훈 프로파일러 역시 "(피해자의) 목 부위를 20번가량 찌른 거면 속된 말로 목이 너덜너덜해질 정도였을 것"이라며 "당시 최씨는 감정적 통제가 되지 않는 상태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여자 친구를 살해한 수능 만점 의대생으로 알려진 인물의 신상이 온라인에서 확산하고 있다. 해당 인물이 과거 지자체가 운영하는 블로그와 인터뷰하며 찍은 사진 (출처=SNS) *재판매 및 DB 금지

아울러 전문가들은 최씨의 사건 전후 행적을 톺아보며 이번 사건이 계획 범행일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이수정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이 사건은 치밀하게 계획된 것으로 보인다"며 "일단 최씨가 흉기를 미리 구매하지 않았나. 뿐만 아니라 (범행 후) 옷을 갈아입었단 것은 현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고 있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이웅혁 교수는 범행에 최씨가 의학적 지식을 활용했다고 봤다. 그는 "의대생이었으니 어느 부위가 급소라는 의학적 식견이 있었을 텐데, 그것을 활용해 1㎜만 스쳐도 급사하는 경동맥을 공격했다"며 "생명을 가장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 의사를 준비하던 사람이 이런 일을 저질렀다는 점은 상당히 특이하다"고 했다.

최씨가 사건 발생 80분이 지나 부모와 통화한 뒤에야 "복용하던 약을 (옥상에) 두고 왔다"고 경찰에 진술한 것을 두고도 '심신 미약'을 목적으로 일부러 약을 언급한 것이 아니냔 분석이 나왔다.

한 전문가는 "살인을 저지른 지 1시간20분 정도가 지난 시점에서 약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상당히 특이한 점"이라고 짚었다.

이와 함께 "일단 약의 종류가 무엇인지가 중요하다"며 "과거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가해자 전주환은 심신상실을 이유로 감형을 주장하려 일부러 정신과 진료를 받은 적이 있다. 만약 정신질환과 관련된 약이라면, 그 사례와 비슷하지 않을까"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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