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술 양조, 임진·정유란 때 잡혀간 조선인이 가르쳤다

기사등록 2024/05/07 17:13:14 최종수정 2024/05/07 19:56:52

김문길 한일문화연구소장, 문헌·양조장 등 확인

[울산=뉴시스] 420여년 전 술을 삭힌(발효) 가마솥   *재판매 및 DB 금지
[울산=뉴시스] 조현철 기자 = 임진왜란·정유재란 때 왜장 사가라 요리후사가 술을 빚는 조선 기술자들을 대거 잡아가 고향에 양조장을 만들었고, 오늘날에도 그 지역 명주로 제조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임진왜란은 문화 전쟁이다'의 저자 김문길 소장(한일문화연구소·부산외대 명예교수)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에 따라 조선으로 출병한 왜장 사가라의 고향을 방문해 조선인 술 제조 기술자를 잡아간 문헌과 양조장을 견학·확인했다고 7일 밝혔다.

김 소장에 따르면, 임진왜란 당시 도요토미는 조선의 기술자를 잡아 오라고 명령했다. 이 명령 문서는 국립고베대학 도서관의 나베시마 사료관이 보관하고 있다.

'조선에서 많은 기술자(細工)를 잡아 올 때 심지어 바느질 잘하는 여자들은 별도 성(도요토미 거처)에 보내도록 하라고 명령했다'는 기록과 함께 '(도요토미의 명을 받은 왜장) 나베시마·사가라는 술 빚는 기술자를 자기 고향으로 데려가 사가라 양조장을 만들었다'고 적혀 있다.

구마모토에서 출병한 가토 기요마사도 정유재란 때 울산성 전투 중 술을 만드는 기술자를 잡아가 고향 구마모토에서 술을 제조토록 했다. 구마모토 주민들은 주조법을 전해준 데 고마움을 표하는 차원에서 서생포 왜성 방문 답례 문화교류 때 빚은 술을 가져온 바 있다.

김 소장이 확인한 사가라 술은 사가라의 고향 구마모토현 히도요시시의 명주다.

김 소장은 "왜장 이름을 딴 사가라 술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울산성 전투에서 전사한 조선인 귀를 베어가 귀 무덤을 만들고 그 지방에 전래시킨 이 술로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고 전했다.

[울산=뉴시스] 조선인이 전해준 기술로 제조해 판매 중인 다양한 일본술, 임진왜란 후 조선인이 가르쳐준 술 담그는 과정을 그린 그림,  왜장 사가라 초상화  *재판매 및 DB 금지
가토 기요마사의 조선 진군에 가담한 사가라는 술을 담그는 제조법(발효)을 고향 주민들에게 직접 가르쳤다. 지금도 그가 잠든 혼묘지(本妙寺)에 문화재급 보물관을 만들어 제조법을 보관하고 있다.

가토는 술과 도자기 등 조선의 기술자들로 조선인촌을 만들고 '당인정(唐人町)'이라고 명명했다. 왜인들은 임진왜란 때 조선을 '당국 조선인'(당인)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사가라가 살았던 구마모토에는 '울산정(蔚山町)' 이 있다.

김 소장은 "구마모토에 가서 버스를 타면 '울산 마치(町)에 내리세요'라고 안내를 한다. 울산마치에 사는 사람은 울산성(姓), 서생성(울산 울주군 서생면에서 온 후손)을 가진 사람이 많다. 전화번호부를 보면 울산마치(蔚山町)에 사는 사람이 수천명 되고 전국에 수많은 사람이 있다"고 밝혔다.

"사가라 술 종류는 다양하다. 공장을 찾아가 술을 빚는 과정을 보면 조선인이 활약한 역사를 생생하게 볼 수 있다"면서 "옛날 수작업으로 술을 발효시키는 솥이 있고 삭히는 방법, 술을 빚는 과정 기록이 있다. 귀 무덤이 있는 가까운 거리에 여러 양조장이 있고 술 종류도 다양하게 생산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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