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 개시 30분 전부터 남녀노소 긴 줄…투표소 혼동에 헛걸음도
"상호 비방·정쟁·색깔론은 이제 그만" "먹고 사는 문제부터 해결"
[광주=뉴시스] 박기웅 이영주 김혜인 기자 =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본투표일인 10일 광주 지역 각 투표소에서 주권자 권리를 행사한 시민들은 새 일꾼들을 향해 "막말·혐오로 얼룩진 정쟁을 끝내고 오로지 민생 살리기에 전념해달라"고 한목소리로 강조했다.
이날 오전 광주 남구 한 태권도장에 마련된 진월동 제5투표소장 입구에는 투표 시작 30분 전부터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려는 유권자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긴 투표 행렬에는 아르바이트 가기 전 투표소를 찾은 대학생, 지팡이를 짚은 백발의 할머니, 어린 자녀를 품에 안은 아버지, 노모 손을 꼭 잡고 찾아온 중년 남성 등 남녀노소 가릴 것 없었다.
공공기관이 아닌 태권도장에 투표소가 마련되자 "여기 맞아요?"라고 거듭 묻는 유권자도 있었다.
오전 6시 정각. "시작하겠습니다"는 안내에 맞춰 유권자 20여 명이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거나 설레이는 듯한 표정으로 투표소에 들어섰다.
선거관리사무원들은 선거인 명부 등재 번호와 신분증을 꼼꼼하게 확인한 뒤 투표용지를 건넸다. 등재번호와 맞지 않은 투표소를 찾아 헛걸음한 유권자도 있었다.
백발의 90대 유권자는 출마 정당이 역대 선거에서 가장 많아 51.7㎝에 이르는 비례대표 투표용지를 건네 받은 뒤 "이것이 몇 개여?"라며 당혹스러워하기도 했다.
투표를 마친 유권자들은 투표 인증사진을 촬영하거나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다며 저마다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반면 착잡한 얼굴로 투표소를 나오며 "기대도 안 한다"며 회의적 반응을 보이는 유권자도 있었다.
진월동에 사는 손모(59·여)씨는 "여·야 정쟁에 질렸다. 싸움을 멈추고 오직 국민만 바라보고 국민의 이익에 부합하는 정치를 해달라"고 정치인들에게 당부했다.
대학생 한모(25)씨는 "지역 정서보다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는지 등 후보 개개인의 인물과 정책을 보고 투표했다. 공약을 잘 지켜달라"고 밝혔다.
아들과 함께 투표를 마친 김모(90)씨는 "국민이 먹고 사는 것이 힘들지 않도록 민생을 잘 돌봐달라"며 민생을 강조했다.
비슷한 시간대 북구 우산동행정복지센터에 마련된 우산동 제1투표소도 투표 시작 20분 전인 오전 5시40분부터 유권자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출근 전 일찌감치 투표소를 찾은 중년의 남성부터 밤새 축구를 보다 나왔다는 대학생, 아침 운동 삼아 나온 부부 등이 투표에 동참했다.
차분한 투표소 분위기에 작은 소동이 한바탕 벌어지기도 했다. 중년 여성이 갑자기 "이거 (기표 도장이) 반 밖에 안 찍혔는데 어쩌죠"라며 자신의 투표용지를 펼치려던 것.
선거관리원들은 "그거 펼치면 안돼요! 기표된 것 저희에게 보여주면 안 됩니다"라고 다급히 외치며 제지했다. 이후 "절반만 찍혀도 된다"는 설명을 들은 유권자는 멋쩍게 웃어 보이며 투표함에 자신의 표를 집어 넣었다.
투표소를 잘못 찾아온 유권자들도 상당수 눈에 띄었다.
한 30대 유권자는 "여기 중흥동 투표소 아닌가요?"라고 물었다가 되돌아갔고, 또 다른 중년 유권자는 "바로 옆 아파트 사는데 왜 등재번호가 다르냐. 집 앞이라서 당연히 여기에서 투표를 하면 되는 줄 알았다"며 머쓱한 듯 발길을 옮겼다.
인근 전남대 컨벤션홀에 마련된 용봉동 제4투표소에는 '목욕 재계'까지 한 일가족도 있었다.
이른 아침 부모님과 목욕탕에 들렀다가 투표소로 왔다는 김모(42·여)씨는 "목욕 재계를 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투표했다"며 미소지었다. 그러면서도 "서로 헐뜯고 비방하는 정치를 벗어나 새로 뽑힐 대표자는 민생을 위한 정치를 해주길 바란다"며 뼈 있는 한 마디를 남겼다.
시외 출근 전 일찍 투표소를 찾은 김옥(62)씨는 "목수 일을 하는데 지금 경기가 IMF(국제통화기금) 위기 때보다 더 심각하다. 먹고 살기 참 힘들다"며 "당선자들이 침체한 경기가 되살아 날 수 있도록 힘써달라"고 역설했다.
문흥1동 제4투표소가 설치된 문산초등학교 도담관 앞에서도 간혹 투표소를 잘못 찾은 유권자들을 빼면 순조롭게 투표가 진행됐다.
유권자들은 무사히 투표를 마치고 한결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왔지만 정치권을 향한 목소리 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엄중했다. 특히 변화를 바라는 목소리를 표심에 담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모(72·여)씨는 "한 표라도 보태서 나라가 변하길 바란다. 물가, 실업률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더미"라며 "내가 던지는 한 표로 긍정적 변화가 이뤄지길 바란다"고 했다.
강모(59·여)씨도 "매일 짜증나는 상호 비방성 유세 소식을 들으면서 얼굴이 찌푸려졌다. 어느 한 쪽에서 막말 봇물을 터트리면 여기저기서 비슷한 험한 말이 선거 기간 동안 오갔다"며 "정치가 품위를 잃었다. 품위를 잃은 정치에 변화가 생기길 바라는 마음으로 투표했다"고 강조했다.
식당을 운영하는 한영택(57)씨는 "뭐라도 바뀌어야 한다. 색깔론도 지쳤고 조금이나마 내 삶에 도움이 되는 후보를 뽑기 위해 투표할 때마다 노력하려 한다"며 "파벌 싸움, 막말은 이제 끝나야한다. 내 한 표가 의미있는 변화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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