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프로 '스타킹' 출연해 랩 실력 뽐냈던 '엄지왕자' 최충일씨
사회복지사이자 장애인식개선 강사로 팟캐스트·글쓰기 활동
가족은 삶의 원천, 장애인도 보호자로 인정받는 사회 분위기 필요
"왼손 없는 사람은 영국에서 오른손 '유저'…한국은 절단장애인"
[수원=뉴시스] 박종대 기자 = 비장애인이나 장애인 누구나 홀로 살아갈 수는 없다. 우리가 국가나 사회로부터 제도적 보호를 받는 것도 개개인이 자립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유아기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국민이라면 자신이 처한 실정에 맞는 사회보장이 필요하지만, 아직 우리 사회는 장애인 지원에 상대적으로 인색해 보인다. 뉴시스는 총 3차례에 걸쳐 이 땅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장애인의 삶을 들여다보고, 과연 이들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와 향후 정책과제가 무엇인지를 모색해본다. <편집자주>
[강요된 자립①]통돌이 세탁기에 갇힌 지체장애인, 죽음의 공포를 느끼다
[강요된 자립②]꼭두새벽에 기상하는 뇌병변 직장인…불러도 기약 없는 '장콜'
[강요된 자립③]비장애인도, 장애인도 홀로 설 수는 없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 사는 최충일(41·지체장애)씨는 아직도 혼자 자취했을 때 겪었던 '통돌이 세탁기 사건'만 떠올리면 눈앞이 아찔해진다. 서울 노원구에 소재한 복지관에 다니던 때였다. 아침 출근길에 평소처럼 세탁기를 돌린 뒤 빨래를 널어놓고 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세탁기 안에 들어있던 빨래를 꺼내려고 손을 뻗다가 몸이 앞쪽으로 고꾸라지며 그대로 처박혀 버렸다. 최 씨는 새우등처럼 허리가 구부정하게 꺾인 채 다시 거꾸로 빠져나오기도 힘든 자세로 그 안에 갇히게 되자 순간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보다 그를 두렵게 만든 것은 '죽음의 공포'였다. 축축하게 젖은 빨래가 뒤엉켜 있는 컴컴한 세탁통 안에서 아무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이대로 죽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그를 엄습했기 때문이다.
최 씨는 뼈를 만드는 구조가 다른 사람보다 불완전하게 형성돼 있는 '선천성골형성부전증'이란 희귀질환을 갖고 태어난 지체장애인이다. 기침을 할 때 느껴지는 약한 충격에도 뼈가 쉽게 부러질 수 있다. 여태까지 뼈가 부러진 횟수만도 40번이 넘는다.
비록 최근 부러진 횟수가 줄었다고 해도 그동안 1년에 한 번꼴로 다친 셈이다. 뼈가 약해 전동휠체어를 이용해 이동해야 하며, 키도 117㎝로 왜소한 체구다. 만일 비좁은 세탁통 안을 빠져나오려고 신체를 움직이다가 뼈라도 부러지면 꼼짝없이 그 안에 갇힌 채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집 안에 있던 스마트폰에서는 자신을 찾는 휴대전화 진동소리가 들려왔지만 지금 그를 도와줄 사람은 나 자신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거꾸로 박혀있던 머리와 몸통을 낑낑거리며 조심스럽게 꼼지락 꼼지락 움직이는 등 약 30분도 넘게 사투를 벌인 끝에 가까스로 통돌이 세탁기를 빠져나왔다. 그런데 이미 정해진 출근시간은 한참 지난 뒤였고, 이는 그에게 장애인 자립의 한계를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준 악몽 같았던 경험으로 남게 됐다.
최 씨는 "중증장애인들이 24시간 활동보장 운동을 위한 시위를 하는데 그 사람들이 원하는 게 단순히 내가 불편해서 이를 해달라는 것이 아니"라며 "당장 내가 세탁기에서 옷을 꺼내는 게 나의 생존권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보통 '데인저'(Danger)는 감염 위험이나 낙석, 절벽 같은 것인데, 저한테는 세탁기에서 빨래를 꺼내는 게 '리스크'(Risk)가 아니고 데인저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러한 처지에 놓인 국민의 생명을 보호해주는 게 국가의 역할"이라며 "그런데 장애인은 위험하니까 지하철도 타지 말고, 가스레인지도 켜지 말고, 세탁기도 돌리지 말고, 아무 것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지하철역 발판에 전동휠체어 바퀴가 빠지지 않도록 이를 보완해주면 제가 출퇴근을 할 수 있는 것처럼 그것이 되는 순간 '보통의 시민'이 된다"며 "개별적으로 다 누구한테 맞춰주고 이럴 수는 없지만 이를 보완해주고 살아가게끔 했을 때 장애인 자립도 수월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최 씨가 몇 해 전 일본여행을 갔을 때 버스기사가 보여준 응대는 우리나라의 모습과 너무 상반돼 씁쓸함을 안겨줬다. 버스정류장 주변에 전동휠체어를 탄 채로 우연히 서 있는데, 그를 발견한 버스기사가 자연스러운 행동인 것처럼 자신 앞에 가까이 차량을 정차하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 버스기사들이 자신과 눈을 마주쳤음에도 자신을 지나쳐 갔던 경험이 일쑤였던 그의 입장에서는 이 같은 장면이 상당히 낯설었다. 심지어 버스기사는 그가 저상버스에 탈 수 있도록 수동으로 작동되는 발 디딤판을 깔아주려고 했다. 국내에서 그는 비슷한 상황에 처했을 때 발 디딤판이 고장이 나 있거나 버스기사가 이를 작동해본 적이 없어 쓸 줄을 몰라 난처해 하는 경험도 겪은 적이 있다.
최 씨는 "기사님이 이게 너무 익숙한 경험인지 일본 시민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내가 미안함이 들지 않는 게 진짜 새로운 경험이었다"며 "장애인이 타는 데도 한 번도 승객들이 짜증을 내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휴대전화를 하면서 기다려줬다. 이 때문에 문득 한국에서 버스가 서 주는 것에도 고마움을 느꼈던 나 자신이 떠올라 '내가 왜 감사해야 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현재 그는 한 가정의 가장이자 아버지다. 아내 정현주(41)씨는 2012년 서울 노원구에 소재한 복지관에 다니던 때 만나 결혼에 이르게 됐다. 그처럼 정 씨도 장애가 있다. 아내는 뇌병변 장애로 인해 한쪽 손의 팔꿈치 아래로 손가락을 움직일 수 없다. 둘 내외는 상대방이 안고 있는 장애로 인한 부족한 점을 서로 채워주면서 세상의 단 하나 뿐인 존재인 '비장애인 아들'을 키우고 있다.
올해로 12살이 된 최 씨의 아들인 지성 군은 그에게 가장 든든한 우군이다. 하지만 늘 마음 한 켠에는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다른 또래 친구들의 비장애인 아빠들처럼 활동적으로 놀아주고 싶은데, 자신의 장애를 이유로 이를 마음껏 원하는 대로 해줄 수 없어서다. 마치 그의 장애가 아들에게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면 그의 마음은 자신의 키보다 한 없이 작아진다.
최 씨는 "가장으로서 저도 똑같은 소비자인데 아들이 아파서 병원에 데리고 갔을 때 간호사들이 제가 아닌 다른 보호자가 없는지 물어보는 경우가 있다"며 "아들은 아빠라는 든든한 울타리에서 성장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여전히 나를 아빠의 모습보다 장애만을 보는 것 같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처럼 그는 대한민국에서 장애인으로 산다는 게 얼마나 많은 편견과 불편함과 마주하는 삶인지 잘 이해하고 있다. 자칫 그 무게에 짓눌려 심적으로 위축될 수 있지만, 그는 늘 유쾌하게 살려고 노력한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을 향한 편견이나 차별을 줄여나가는 데 힘을 보태기 위해 장애인식개선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는 약 6년 전부터 성남시 소재 복지관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으며, 강의 요청이 들어올 때면 비장애인이나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장애인식 개선활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최 씨는 대학을 졸업한 뒤 당시 인기리에 방영됐던 SBS 예능 프로그램인 '강호동의 스타킹'에서 '랩 하는 엄지왕자'로 출연해 랩 실력을 뽐내 화제를 모은 적도 있다. 대학시절 힙합동아리에 들어가 비장애인 학생들과 함께 홍익대 앞 놀이터에서 버스킹 공연을 할 때는 'C-Flow'라는 예명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는 사회복지사이자 장애인식개선 강사로 활동하면서 일상 속에서 순간순간마다 느낀 감정이나 일화들을 자신만의 에세이 형태의 글로 정리한 뒤 이를 온라인 글쓰기 플랫폼인 '브런치 스토리'에 올리고 있다. 작가로서 필명은 '엄지왕자 aka C FLOW'다. 2015년부터 하나둘씩 올리기 시작한 게시글이 최근까지 무려 80여편에 달한다. 그는 이 공간에서 자신의 장애를 부끄러워 하지 않고 당당히 드러내며 스스로 떳떳한 인간으로서 살아가고 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최 씨는 지난 4일 브런치에 '의존하기를 선택한 삶'이란 제목으로 우리 사회가 되새겨보면 좋을 만한 글을 올렸다. 그는 이 글에서 "상호의존을 장애인에게 더 깐깐한 기준을 두고 바라본 시선들"을 언급하며 "'우리는 이런 게 불편해요'가 아닌 '우리가 의존하는 삶도 다르지 않아요'로 관점의 변화를 이끌고 싶은 마음이 크다"고 진심을 털어놨다.
그러면서 "어느 누구도 우리의 의존을 손상 때문에 필요한 의존으로 보지 않기를 바라지만 세상은 녹록지 않다"며 "우리가 의존하는 삶을 장애라는 원초적인 시선으로만 읽히지 않도록 그 날것들을 기록하고 싶다"고 바람을 적었다.
최 씨는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왼손이 없는 사람은 영국에서는 오른손 '유저'(User)인데 우리나라에 오면 절단장애인으로 분류된다. 영국은 이들에 대해 오른손 사용자이기 때문에 오른손에 맞춰 생활하게 해준다"라며 "(우리나라처럼) '넌 절단장애인이니까 일을 못 해. 그러니까 우리가 돈을 할인해줄게'라는 식으로 대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이어 "저는 그 나라에서 휠체어 유저다. 만일 휠체어 유저가 260만명의 장애인 중에 100만명이라고 하면 그 유저에 대한 니즈가 있을 것이고, 거기에 맞춰진 정책들이 가야 한다"고 방향성을 제안했다.
최 씨는 "그것이 지체장애인들은 물리적인 환경인 것이고, 발달장애인들은 주로 의사소통일 것인데, 우리나라는 빈곤을 채우기 위한 정책에 머물고 있다"며 "예를 들어 핸드폰 요금이나 전기세를 깎아주는 식의 감면 정책에 매몰되지 말고 좀 더 사회활동 중심의 예산으로 개선하는 게 좋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장애인을 향한 부정적인 시선과 편견과 관련한 당부도 남겼다. "인구학적으로 보면 지금의 저희는 장애인 2세대로 전문 직종에서 사회생활하는 사람도 물론 있다"며 "하지만 앞서 먼저 태어난 1세대들은 장애로 인해 교육을 받지 못 했거나 여러 이유로 경제적으로 빈곤에 처한 장애인들이 제가 봤을 때는 거의 60~70% 가량으로, 시간이 흐를수록 정보 제공 격차가 더욱 심화되면서 사회로부터 점점 도태될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고 불가피한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최 씨는 그러면서 "이들이 살아온 삶의 이면을 봤을 때는 의존을 통해서만 살려는 모습이 이해는 된다. 이제는 '그것이 얼마 남지 않았다'라는 생각은 들면서도 그전에 좀 더 당겨오고 싶은 게 제 마음"이라며 "이를 당겨오려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고, 앞으로 남은 건 방법적인 것이다. 정치권에서도 어쨌든 이 같은 얘기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변화의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고 적극적인 대책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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