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문항 이의신청 심사기준에 '사교육 연관성' 추가
문항 사교육 연관성 판단 기준, 전문가와 협의해 마련
출제위원 후보자 검증 강화…사교육 영리행위 시 배제
출제진을 선정할 땐 국세청 소득 증빙을 받고 규모부터 무작위로 선발한다. 최근 감사원 감사에서 지적받은 2023학년도 수능 영어영역 23번 '판박이 지문' 논란의 재발을 막기 위한 조치다.
오승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은 해당 논란과 관련해 평가원 담당자들이 접수된 이의제기 사항을 제대로 심의하지 않았다는 감사원의 지적에 대해 "상황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다"며 "국민께 송구하다"고 28일 말했다.
◆수능 문항 이의신청 심사기준에 '사교육 연관성' 추가
이날 교육부는 수능 출제진과 사교육 업체 간의 '이권 카르텔'을 근절하기 위한 '수능 출제 공정성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번 대책은 최근 감사원 감사에서 지적을 받은 2023학년도 수능 영어 23번 '사교육 판박이 지문' 논란의 재발을 막기 위해 마련됐다. 감사원은 출제 과정에서 현직 교사와 사교육 간 유착 의혹을 지적한 바 있다.
해당 지문은 베스트셀러 '넛지' 저자인 캐스 선스타인(Cass Sunstein)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의 저서 '투 머치 인포메이션(Too Much Information)'에서 나왔다. 메가스터디 소속 일타강사 A씨의 사설 모의고사와 시험 이듬해 출간 예정이던 EBS 교재 감수본에 실려 있었다.
평가원은 수능이 끝나면 이의신청 게시판을 열어 문항과 정답에 대한 오류를 접수 받고, 이후 지적된 문제를 심사한 뒤 '모두 정답' 처리 여부 등을 판단해 왔다.
논란이 됐던 2023학년도 수능 영어 23번 지문은 당시 이의신청이 다수 제기됐지만 심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당시 이의신청 총 349건 중 215건(61.6%)에 달했다.
이와 관련해 오승걸 평가원장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시행 기본계획' 브리핑에서 "수능시험을 주관하는 기관으로서 감사원의 지적과 수사 요청에 대해서 엄중하게 상황을 인식하고 있다"며 "국민께 송구하다는 말씀도 드린다"고 사과했다.
교육부는 이를 고려해 향후 이의신청 심사 기준에 '사교육 연관성'을 추가한다. 그간 이의심사는 문항의 오류 여부에 대해서만 이루어졌으나, 올해 수능 6월 모의평가부터는 문항의 사교육 연관성도 보겠다는 것이다.
의혹이 제기된 문항에 대해선 현직 교사로 구성된 '수능 평가자문위원회'가 검토한 뒤 자문 의견을 제공한다. 이 조직은 윤석열 대통령의 수능 '킬러문항 배제' 지시가 있은 지난해 9월 모의평가 이후 도입됐다.
현직 교사 자문위는 사교육 문항과 수능 문항 간 유사도, 해당 사교육 문항의 영향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시험 공정성 저해 여부를 자문할 계획이다.
◆"수능문항 '사교육 연관성' 판단기준, 전문가와 협의해 마련"
특정 문항에 대한 사교육과의 연관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향후 전문가들과 협의해 마련하기로 했다. 다만 수능 문항과의 유사 정도와 해당 문항을 먼저 풀어본 학생들에게 얼마나 유리하게 작용했는지 등을 고려하겠다고 했다.
오 원장은 "이의신청이 들어왔을 때에 (사교육과의) 연관성이 있는 문항들에 대한 처리 부분과 기준은 전문가들과 협의를 하고 그 기준을 마련해 나가겠다"며 "사교육 문항과 수능 문항 간의 유사 정도와 실제 그 문항을 통해 시험 본 수험생 중에 특정 사교육을 받은 학생들에게 영향력을 실질적으로 어느 정도 끼쳤느냐는 정도(를 고려할 것이다)"고 말했다.
오 원장은 "해당 문항이 (사교육과 연관성이 있다고) 판정됐을 때는 위원회에서 여러 가지 가능성을 두고 판정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교육부는 사교육 연관성이 확인된 수능 문제를 무효로 하고 '모두 정답' 처리하는 지에 대해선 즉답을 피했다.
교육부 한 간부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 별로(사안 별로) 판단해야 할 것"이라며 "이상한 문제가 나오면 해당 출제자를 배제하는 게 가장 좋고, 어느 정도의 강력한 연관성이 있다면 이의심사위원회 판단에 달려 있다"고만 했다.
◆출제위원 후보자 검증 강화…사교육 영리행위 시 배제
교육부와 평가원은 수능과 모의평가 출제위원 후보자를 인력풀(명단)에 등록할 때 사전 검증을 강화한다.
현재 출제위원은 대학 조교수 이상의 교원, 연구기관의 연구원 또는 고교 근무 총 경력 5년 이상의 고교 교사 및 이와 동등한 자격을 갖춘 자가 맡을 수 있다.
사교육 업체에 대한 모니터링과 신고접수를 강화해 출제위원이 스스로 출제 참여경력을 홍보한 경우 인력풀에서 배제한다. 올해 수능 출제위원을 선정할 때도 소득 관련 증빙 자료를 국세청에서 넘겨 받아 살펴보고, 사교육 업체와 영리행위를 한 인사는 전면 배제한다.
오 원장은 "그동안 등록된 인력풀은 정비되지 않았는데, 이번에 전체적으로 정비했다"며 "충원할 때 사교육과의 연관성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 확인한 다음 인력풀에 등재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또 "인력풀에 등재됐다 하더라도 그분들이 출제위원으로 선정될 때는 국세청 등을 통해서 소득 과세자료를 받아서 연관성을 철저히 점검하겠다"고 했다.
수능 출제위원을 선정할 땐 이처럼 검증된 인력풀 내에서 무작위로 선정한다. 명단 뿐만 아니라 선발 규모부터 무작위로 결정할 방침이다.
평가원 관계자는 "지난해 수능엔 5배수를 추천자로 올려서 무작위 순위를 선정해 섭외했다"며 "올해 6월 모의평가부터는 무작위로 추천자 배수(규모)부터 선정하고 무작위 순위로 전산으로 뽑을 예정"이라고 전했다.
수능 출제위원들은 합숙에 들어가기 전, 그리고 입소 이후 발간된 사설 모의고사를 모두 살펴본 뒤 중복 논란이 없도록 출제에 참고하도록 지원한다.
사교육업체에 공식적으로 자료를 요청해 시중 문제지 및 주요 사교육업체 모의고사 등을 제출 받고, 향후 발간 예정인 자료에 대해서도 발간 계획을 제출 받는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제도 개선을 통해 수능 출제진과 사교육 간 카르텔을 근절해 나갈 것"이라며 "올해도 변별력을 확보하면서도 공교육 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킬러문항을 배제하는 '공정수능' 원칙을 유지해 신뢰도를 회복해 나가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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