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 받고 수사정보 유출' 퇴직 경무관 재판서 엇갈린 법정 증언

기사등록 2024/03/26 18:36:55 최종수정 2024/03/26 20:31:30

당시 수사팀장 "퇴직 경무관에게 수사정보 흘린 적 없다" 거듭 부인

기밀 전해들은 사기범·브로커 "수사계획 등 도움 받았다"…위증 공방


[광주=뉴시스] 변재훈 기자 = 브로커에게 뇌물을 받고 가상화폐 사기 사건 수사 정보를 빼돌린 혐의를 받는 경무관급 퇴직 경찰관의 재판에서 법정 증언이 엇갈렸다.

당시 수사팀장은 퇴직 경무관에게 수사 정보 누출 사실이 없다고 주장한 반면, 해당 사건 사기범과 브로커는 경무관의 혐의 사실을 인정하는 취지로 증언했다.

광주지법 형사8단독 김용신 부장판사는 26일 202호 법정에서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된 장모(59) 전 경무관에 대한 재판을 열었다.

장 전 경무관은 지난 2021년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가 수사 중이던 가상화폐 투자 사기 사건에 '영향력을 행사해주겠다'는 명목으로 사건 브로커 성모(62·구속기소)씨에게 2차례에 걸쳐 4000만원을 받아 챙긴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됐다.

당시 브로커 성씨의 로비 자금 창구 역할을 한 가상화폐 투자 사기범 탁모(45·구속기소)씨는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에 입건돼 수사를 받고 있었다.

검사는 서울경찰청 수사부장을 지낸 장 전 경무관이 서울청 금융범죄수사대 수사팀장 박모 경감에게 '수사 정보를 알려달라'고 부탁해 탁씨의 투자 사기 사건에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봤다. 

반면 장 전 경무관은 "임원으로 재직한 A업체가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어 업체 계좌로 4000만 원을 빌린 것이고 오랜 경찰 재직 경험에서 조언한 정도"라며 전면 부인하고 있다.
[광주=뉴시스] 이영주 기자 = 구속 기소된 사건 브로커로부터 금품을 받아 수사에 개입했다는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전직 경찰 고위 간부 A씨가 9일 오전 광주 동구 광주지방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2023.11.09.leeyj2578@newsis.com


이날 재판에는 당시 장 전 경무관과 자주 연락을 주고받은 수사팀장 박 경감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현재 박 경감도 수사 정보를 외부 유출한 혐의(공무상비밀누설)로 불구속 기소됐으며 지난달 중순부터 직위 해제된 상태다.

검사는 증인 신문에서 박씨에게 당시 수사 과정에서 잦은 장 전 경무관과의 통화 내역 등을 들어 구체적인 대화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박 경감에게 집중적으로 물었다.

특히 대질 신문 계획, 탁씨에게 불리한 증거 자료 확보 사실 등이 유출하지 않았느냐고 질문했다. 당시 수사 과정에서 일부 혐의에 대한 송치 여부 결정이 바뀐 경위에 대해서도 신문했다.

이에 박 경감은 거듭 "수사 정보를 유출한 바 없다", "수사 내용을 알려준 적 없다"고 답했다.

또 "자세한 통화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면서도 "장 전 경무관과는 자녀 문제 등으로 공통점이 많고 아는 지인이 겹쳐 통화로 일상적인 대화를 자주 나눴을 뿐이다"는 취지로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에도 수사팀만 아는 내용이 누설된 사실을 알았지만 제가 흘린 것은 아니다"며 "수사 과정에서 안 사실인데 당시 사기 피해자들이 피의자인 탁씨에게 수사 내용과 관련 자료를 넘긴 사실이 있다"고도 주장했다.

반면 앞서 재판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가상화폐 투자 사기 피의자이자, 브로커 성씨에게 로비자금을 대며 수사 편의를 제공 받은 탁씨는 상반된 증언을 했다. 그는 브로커 성씨를 통해 주요 수사 정보를 귀뜸받았다고 증언한 바 있다.

탁씨는 법정에서 "성씨가 고급 한정식 음식점에서 여러 고위 경찰관들(높은 경찰들)과 만나 자리를 하고 있다고 해 2차 술자리로 옮길 때 동생을 보내 술값 190만 원을 대신 결제해준 적도 있었다. 장 전 경무관도 자리했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고 말했다.

이후 누범 기간으로 구속될 처지였지만, 방어권 행사에 유리한 불구속 상태로 수사가 진행됐고, 수사팀장의 태도가 바뀐 것 같았다고도 했다.

경찰이 앞으로 어떤 혐의를 불송치할 지, 대질 조사 일정, 보완 수사 계획에 대해서도 들었다고 이야기했다.

장 전 경무관에게 뇌물을 건네고 전해들은 수사 정보를 탁씨에게 일러준 브로커 성씨 역시 증인으로 나와 비슷한 취지로 말했다.

성씨는 "장 전 경무관에게 부탁하니 '알아봐주겠다'고 해서 수사 대응 방안, 참고인 조사 계획, 검찰의 보완 수사 요구에 대한 경찰 방침 등을 전해 듣고 탁씨에게 전해줬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이렇게 장 전 경무관의 혐의를 가려낼 증언이 서로 엇갈리면서 위증 공방까지 벌어졌다.

검사는 박 경감이, 장 전 경무관의 법률대리인은 탁씨가 위증을 하고 있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재판장은 "증인들의 증언이 정반대로 엇갈리고 있는 만큼, 사건 관련 다른 증인들을 불러 신문하겠다"고 밝혔다.

다음 재판에선 탁씨의 가상화폐 투자 사기 당시 담당 수사관 등 3명이 증인으로 출석한다. 다음 재판은 다음 달 9일 열린다.

한편, 장 전 경무관에게 돈을 건넨 브로커 성씨는 2020년부터 2021년 사이 탁씨 등 사건 관계인들에게 13차례에 걸쳐 수사 무마 또는 편의 제공 명목으로 승용차와 17억 4200만 원을 받아 챙긴 혐의(변호사법 위반)로 구속 기소돼 1심에서 징역 3년 6개월에 추징금 17억 1300만 원을 선고 받았다.

성씨는 골프와 식사 접대를 하면서 검·경·지자체 공직자들과 친분을 쌓은 뒤 각종 청탁을 해왔다. 검찰은 브로커 성씨의 검·경 인사·수사 영향력 행사에 연루된 전·현직 검찰 수사관·경찰관 등 18명을 기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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