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O, 화물연대 업무개시명령 사실상 노조활동 침해 판단
전공의는 화물연대와 달리 '강제근로' 긴급개입 요청
법조계 "전공의는 근로자…법적으로는 강제근로 맞아"
관건은 '예외성'…"국민의 생명 침해됐는지 따져봐야"
[서울=뉴시스] 고홍주 기자 = 국제노동기구(ILO)가 지난 2022년 화물연대 총파업 당시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에 대해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라고 권고하면서 사실상 노동계의 손을 들어줬다.
최근 의과대학 증원에 반대하며 집단행동에 나선 전공의들도 ILO에 긴급 개입을 요청하면서 화물연대와 같은 방식으로
대응에 나섰는데, 이에 대한 ILO 판단이 어떻게 나올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ILO "결사의 자유 최대한 보장해야"…고용부 "법적 구속력 없어"
16일 대학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전공의들은 지난 13일 ILO에 긴급개입요청 서한을 발송했다.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에 의료인과 의료기관 개설자는 정당한 사유없이 거부할 수 없다는 내용을 담은 의료법 제59조가 ILO가 정한 '강제노동 금지'에 위배된다는 이유에서다.
박단 대전협 비대위원장은 "정부가 업무개시명령 등의 공권력을 통해 전공의를 겁박하며 노동을 강요하는 행위를 즉시 중단해야 한다"며 "대한민국 헌법과 국제 기준을 위배하며 대한민국 국민의 기본권을 탄압하는 의료법 59조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공의들의 이번 대응이 주목을 받고 있는 건 정부가 2022년 화물연대의 집단운송거부에 대해 업무개시명령을 내리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산하 공공운수노조가 ILO에 진정을 넣은 것과 비슷한 전철을 밟고 있기 때문이다.
ILO는 1919년 설립된 국제연합(UN) 산하 기구로, 현재 187개국이 회원국으로 가입해있다. 각국의 노동조건 개선을 통한 사회정의 확립을 위해 모니터링·자문·권고 등 활동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91년 152번째 가입국이 됐다.
우리나라는 ILO 핵심협약 8개 중 7개를 정식 비준했다. ▲취업의 최저연령 최저연령(제138호) ▲가혹한 형태의 아동노동 철폐에 관한 협약(제182호) ▲남녀근로자 동등보수 협약(재100호) ▲고용 및 직업상 차별대우에 관한 협약(111호) ▲강제노동 협약(제29호) ▲결사의 자유와 단결권의 보장 협약(제87호) ▲단결권과 단체교섭권 협약(제98호)이다.
화물연대는 2022년 12월 ILO에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이 87호와 98호 협약 위반이라며 조사를 요청하는 진정을 제기했다.
ILO는 1년4개월여 만인 13일(현지시각) 스위스 제네바에서 제350차 이사회를 열고 결사의 자유 위원회(결사위) 권고안을 채택했다. 결사위는 "자영업 근로자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가 그들의 이익을 증진·방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결사의 자유 및 단체 교섭의 원칙을 충분히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하고, 이와 관련해 취해진 조치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것"을 권고했다.
또 집단운송거부 참가자들에 대해 단지 업무개시명령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형사처벌하지 말고,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과정에서 조합원 명단 제출 요청과 관련해 화물연대 조합원 정보의 절대적인 비밀을 보장하라고도 권고했다.
직접적으로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이 부당하거나 노동기본권 침해라는 판단을 명시적으로 하지는 않았으나 사실상 정부 대응조치가 결사의 자유, 즉 노조활동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곧바로 보도설명자료를 통해 "결사위는 노사단체 등이 결사의 자유 협약 위반을 이유로 진정을 제기하는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권고안을 채택하며 법적 구속력이 없어 직접적인 제재도 없다"고 반박했다.
이어 "권고에 우리나라의 ILO 협약 위반을 언급한 내용은 없으나, 결사위 보고서의 일부 내용에 대해 한국 정부가 결사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노사단체와 국제사회 등이 오인할 소지가 있을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ILO에 공식 답변을 통해 그동안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한국 정부의 이행 노력과 개선된 점을 적극적으로 전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화물연대와는 다르다?…관건은 '국민의 생명과 안녕' 침해 여부
화물연대와 전공의들이 ILO에 개입을 요청한 것은 같지만, 세세하게 살펴보면 다소 다른 점이 있다. 화물연대는 진정 당시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이 강제노동 금지 협약에 위배된다는 주장을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았다.
이성희 고용부 차관은 지난 15일 기자들과 만나 "강제근로 협약은 국민 전체 또는 일부의 생명과 안녕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경우 적용되지 않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며 "전공의들의 집단 행동으로 국민들의 생명과 안녕이 심각하게 위반되는 상황을 감안해 업무개시명령을 한 것이고, 지금까지도 ILO는 강제근로 협약과 관련해서는 비슷한 해석을 해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법조계에서는 법률 그 자체만을 놓고 볼 때 ILO가 강제근로를 인정할 수도 있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우선 전공의들은 화물연대 파업 참가자들과는 달리 '근로자'에 해당한다. 대법원은 이와 관련해 몇 차례 판단을 내놓은 바 있는데, 1998년 판례에서도 "병원의 지휘·감독 아래 노무를 제공함으로써 병원과의 실질적인 사용종속관계가 있었던 경우 그 전공의는 병원에 대한 관계에서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민법 제660조는 따로 약정이 없는 고용관계 당사자는 언제든 계약해지를 상대방에게 알릴 수 있고, 해지 통고를 받은 날로부터 1개월이 경과하면 효력이 생긴다고 규정하고 있다. 전공의들은 지난달 19일 집단 사직을 시작해 곧 있으면 1개월이 된다.
정부는 전공의들은 약정이 있는 근로계약을 했기 때문에 민법 660조가 적용되지 않고, 의료법이 우선 적용되기 때문에 업무개시명령에 따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노동법을 전공한 류재율 법무법인 중심 변호사는 "법적 해석은 의사들의 집단행동에 대한 호불호와는 달리 봐야 한다"며 "노동법적으로는 전공의들이 약정기간이 있는 근로자이기 때문에 민법 660조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해석이다. 일단 사직서를 제출하면 한 달 뒤 효력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근로 계약기간이 2년이어도 그만둬야 한다고 생각했을 때 그만두지 못하면 강제근로로 볼 수 있는 것"이라며 "근로자가 사직서를 냈는데 수리가 안 되는 경우라고 생각하면 ILO가 화물연대보다 수위 높게 권고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현재 대전협 변호인단 역시 사직서 수리 일괄 금지 명령을 핵심으로 보고 있다. 사직서를 수리하지 않는 것은 근로자로서의 전공의들의 기본권을 직접 침해하는 부당한 명령이라는 헌법소원과 이에 대한 취소 처분을 구하는 행정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결국 관건은 전공의들의 집단 진료거부 행위가 ILO 협약 29호에서 정한 예외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의료 공백 사태가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는 상황에 해당하냐는 것이다.
전공의를 대리하는 이재희 법무법인 명재 대표 변호사는 "정말로 국민의 생명과 안녕이 심각하게 위반되는 상황이 벌어졌느냐"며 "정부 스스로도 의료대란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ILO에 긴급 개입을 신청한 건 국제사회의 기준을 구하기 위한 것"이라며 "ILO의 판단이 향후 법원에서 정부 명령의 목적의 정당성과 수단의 적절성을 판단할 때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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