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퇴임 앞둔 노교수도 "근무 들어가야 할 판"
환자 수술 취소, 간호사 불법 업무, 강제 휴가도
"환자, 병원 노동자 방기 말고 즉각 돌아와달라"
26일로 전공의들이 대거 사직을 한 지 일주일이 됐다. 전공의들은 정부가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발표하자 이에 반발해 지난 19일부터 본격적으로 사직 행렬에 나섰다.
조사 시점과 수련병원 수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8000~9000명의 전공의가 사직서를 제출하고 7000~8000명이 실제로 근무지를 이탈한 상황이 일주일째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각 병원 의사 인력의 30~40%를 차지하는 전공의가 빠져 나가면서 의료 현장에선 수술 취소나 연기 등 의료 공백이 발생하고 있다. 복지부가 지난 19일부터 운영한 의사 집단행동 피해신고·지원센터에 접수된 피해 상담 사례는 나흘간 총 189건이다.
특히 직접적인 피해를 받는 환자들은 의료 공백 사태에 분개하고 있다.
안선영 중증질환자연합회 이사는 지난 23일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의협)의 TV토론이 열렸던 KBS1 '사사건건'에서 "장기화 조짐에 대해 크게 우려하고 있다. 환자와 보호자가 잠을 못 이루는 상태"라며 "정확한 것은 정부도, 의협도 환자를 내팽개쳤다는 것이다. 이 부분을 어떻게 할거냐"고 말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한국경영자총협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YWCA연합회,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한국외식업중앙회 등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참여하는 가입자단체 일동은 지난 21일 공동 입장문을 통해 "국민 생명을 볼모로 한 이번 집단행동은 코로나19 현장을 어렵게 지켜준 데 보내준 국민 신뢰를 스스로 걷어차는 행위와 다름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환자 곁을 떠난 의사들의 주장은 그것이 무엇이든 국민들로부터 지지 받지 못할 것임은 자명한 바, 집단행동의 즉각적 중단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건강 상태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장애인들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은 지난 23일 성명서에서 "장애인은 비장애인에 비해 만성질환 유병률이 1.7배 차이가 나고 암검진 수검률은 비장애인보다 10%p 격차가 벌어져 건강상태가 심각하다"며 "의료공백이 발생할 경우 장애인들은 무방비로 희생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빠져 나간 전공의들의 업무를 대신해야 하는 병원 인력들의 피로도도 상당하다.
서울 소재 한 상급종합병원 교수는 "19일 저녁부터 교수들끼리만 근무표를 짜고 거의 '퐁당퐁당' 근무를 하고 있다"며 "기간이 길어질수록 지쳐가는 분들이 많다. 지금은 하루하루가 고비"라고 전했다.
전공의가 이탈하자 그간 암암리에 행해졌던 PA간호사의 불법진료도 늘어나고 있다. 대한간호사협회에 따르면 지난 20일부터 22일까지 애로사항 신고 센터에 134건이 접수됐는데 혈액 분석, 감염 검사, 처방 등 전공의 업무를 대신하게 되는 사례들이 있었다. 일부 병원은 전공의 이탈로 환자 수가 줄자 간호사 의향에 상관없이 강제 휴가를 보내는 곳도 있다고 한다.
김옥란 전국의료산업노동조합연맹 정책국장은 "전공의들의 즉각적인 현장으로의 복귀를 촉구한다. 더는 환자들과 병원노동자들을 방기하지 말고 현장으로, 대화와 숙고의 장으로 돌아와달라"고 말했다.
이처럼 진료 현장의 상황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지만, 정부와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의사 측은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의협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전날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에서 '전국 의사 대표자 확대회의'를 개최하고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추진과 일방적인 의대정원 2000명 증원을 중단해 줄 것을 촉구했다.
여기서 박성민 의협 대의원회 의장은 "정부가 국민을 핑계로 의대정원을 늘리려는 속셈을 드러내고, 필수의료 확충 이란 감언이설 뒤에는 2000명 의대 정원 확충의 부당함을 알리려는 의사를 죽이기 위한 음모가 숨어 있다"고 주장하며 "우리는 반드시 이를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통령실 김수경 대변인은 같은 날 "의대 정원과 관련해서 2000명은 양보하고 또 양보해 최소한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이걸 협상하지 않는 한 (대화에) 못 나온다고 할 경우에는 아예 대화 안 하자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답했다.
'2000명 증원' 만큼은 양보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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