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F 리스크 번질라"…금융당국, 부동산 신탁사 관리 본격화

기사등록 2024/02/15 07:00:00 최종수정 2024/02/15 10:15:29

'뇌관' 떠오른 책준형 신탁…2년 새 119% 급증

"사업장 정리시 영향 불가피"…정부 정책 연동해 제도 개선

[서울=뉴시스] 고승민 기자 = 함용일 금융감독원 부원장이 1일 서울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금융감독원-부동산신탁사 CEO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24.02.01. kkssmm99@newsis.com

[서울=뉴시스]우연수 기자 = '질서있는 퇴출'로 정부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정책 기조에 변화가 생기면서 금융당국이 부동산 신탁사 리스크 관리 강화에 나섰다. 부실 사업장이 정리되는 과정에서 신탁사로 PF발 리스크가 전이될 수도 있으며, 신탁사의 위기가 부동산 개발 시장 전반의 경색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15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업계 1위 부동산 신탁사인 한국토지신탁은 지난해 연결 당기순손실 44억원을 기록하면서 적자 전환했다.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37.1% 감소한 336억원을, 매출액은 27.9% 증가한 2723억원으로 잠정 집계됐다.

회사는 대손충당금 적립에 따른 영업비용 증가와 관계회사의 수익성 감소에 따른 영업외 수익 하락 등을 손익구조 변동의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실적 감소, 재무 건전성 악화, 계열사 자금 지원 부담 등 이유로 신용등급 강등도 이뤄졌다.

한국신용평가는 지난 6일 수시평가를 통해 한국토지신탁의 무보증사채 신용등급을 'A 부정적'에서 'A- 안정적'으로 한단계 하향했다.

보고서는 "차입형 개발신탁 수주 감소에 따른 개발신탁 보수 및 이자수익 감소, 금리 상승으로 인한 이자비용 증가, 현업 사업장에 대한 대손비용 부담 확대 등이 나타난 결과"라며 "2022년 이후 부동산 경기 저하로 수주 실적이 급감한 점, 개발 사업장에 대한 대손 부담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점, 높은 조달금리 부담이 나타나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이익창출력 회복 또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국내 14개 부동산 신탁사 중 자본 규모가 가장 큰 한국토지신탁이 2년째 저조한 실적을 보이면서 PF 부실 리스크가 업권 전반으로 전이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특히 약한 고리로 지목되고 있는 부분은 책임준공형 토지신탁이다. 책준형 토지신탁은 부동산 신탁사가 대주단에게 책임준공을 확약하는 방식의 신탁을 말한다. 착공 이후 본 PF 단계에서는 ▲시공사의 책임준공·채무인수 ▲증권사의 신용공여·유동성공급 등 다양한 형태의 신용보강 방법이 활용되는데 신탁사의 책임준공확약도 그 중 하나다.

신용보강에 신탁사가 들어가면 시공사(건설사)가 부도가 나더라도 책임은 신탁사가 지게 된다. 다른 건설사를 찾아서라도 사업을 완수해야 하며, 준공 기한을 못맞추면 대주단에 손해배상할 의무가 생긴다. 부실 PF 사업장이 늘어날 경우 책준형 신탁이 신탁사 건전성의 뇌관이 될 수 있는 셈이다.

특히 책준형 신탁은 신용등급이 낮아 대주단 돈을 빌려오기 어려운 중소형 건설사들이 많이 활용하는 방식이다. 금투협에 따르면 신탁사들의 책준형 수탁고는 2020년 말 8조2942억원에서 2022년 말 18조1298억원으로 급증했다.

부동산 신탁사의 건전성 악화 리스크가 대주단, 시공사, 수분양자, 여타 사업장으로 리스크를 전이시키고 부동산 시장 전반의 경색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같은 상황에 그간 물밑에서 이뤄지던 당국의 신탁사 리스크 점검 및 강화에 보다 힘이 들어가고 있는 분위기다.
 
우선 금감원은 이달 초 14개 부동산 신탁사 최고경영자(CEO)들을 소집해 신탁사들의 재무 건전성 관리를 강화하고 회사별 충당금 적립 실태를 일제 점검한다고 밝혔다.

당시 함용일 부원장은 "부실 사업장 등에 대한 부동산 신탁사 건전성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충당금 적립 실태를 일제 점검할 계획"이라면서 "우발채무 등 신탁 사업의 실질적 리스크가 순자본비율(NCR)에 제대로 반영될 수 있도록 현행 제도상의 사각지대를 보완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금융투자협회는 금융당국, 업계와 조율하며 책임준공확약 업무처리 가이드라인 신설을 준비 중이다. 책임준공형 관리 토지 신탁 사업시 신탁회사가 신탁계약서에 반영해야 할 사항을 가이드라인을 통해 정하고자 하기 위해서다.

가이드라인에는 신탁사 손해배상의 범위를 준공 지연으로 인해 대주가 실제로 입은 손해로 한정하고 손해배상 이행 시기를 명확히 규정하는 내용, 책준 이행 기간을 현행 6개월에서 보다 탄력적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 등이 검토되고 있다.

당국은 레고랜드 사태 이후인 지난 2022년 말부터도 리스크 점검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며 가이드라인 신설을 검토해왔지만, 최근 달라진 PF 상황에 따라 정부 정책과 연동해 반영할 수 있는 부분이 더 있을지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가이드라인 신설에 참여 중인 한 관계자는 "태영건설 사태 이후 시공사 부실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런 사업들이 신탁사를 많이 끼고 있기 때문에 직간접적으로 (신탁사가) 영향을 받은 업권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또 "지난해까지는 정부가 준공 기한을 연장하며 리스크를 미루던 분위기였다면 올해는 안좋은 곳들을 빨리 정리하자는 쪽으로 바뀌어 신탁사 리스크도 부각된 것 같다"며 "질서있는 퇴출 기조에 따라 정리되는 사업장들이 보다 많이 늘어나면 신탁사 등 참여하고 있는 시장 플레이어들에도 영향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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