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정 품에 안은 채 분향소→대통령실 행진
"질타하려는 법 아니다…참사 원인 알고파"
[서울=뉴시스]임철휘 기자 =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17일 눈과 비가 섞여 내리는 궂은 날씨 속에 용산 대통령실까지 행진하며 윤석열 대통령에게 즉각적인 진상규명 특별법 공포를 호소했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유가협)와 시민대책회의는 이날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 분향소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 전부터 떨어지던 굵은 눈송이는 이내 진눈깨비가 됐고, 보라색 비니를 쓰고 목도리를 두른 유가족들은 묵묵히 눈과 비를 맞았다.
이정민 유가협 운영위원장은 "이태원 참사 특별법은 누군가를 힘들게 하거나 질타하려고 하는 법이 아니다. 159명이란 젊은 청춘들이 희생당한 이 엄청난 참사의 원인을 알고 싶은 것뿐"이라고 호소했다.
윤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고려하는 데 대해선 "합법적으로 만들어진 법을 어떤 이유와 명분으로 거부하겠다는 것인지 궁금하다"며 "이제는 더 이상 정부에 뭐라고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오늘 시위도 그런 점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대통령실을 향해서 행진할 것"이라고 힐난했다.
고(故) 이승연씨의 어머니 염미숙씨와 고 이상은씨의 아버지 이승환씨는 "특별법은 정쟁의 대상도, 총선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법이 될 수 없다"며 "다시는 이 땅에서 이와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참사의 원인을 정확하게 밝히고 재발방지 대책을 세우기 위해 반드시 공포되고 시행돼야 하는 법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부와 여당은 침묵으로 절규하는 유가족들의 호소를 들어달라. 자신의 죽음 뒤에 가려진 진실을 밝혀달라는 희생자들의 소리 없는 목소리를,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돌아온 생존자들의 숨죽인 목소리를 들어달라"며 "특별법을 신속하게 공포하고 법에 따라 설립되는 조사기구에 적극 협조해 진실을 찾아 떠나는 길의 출발선에 유가족들과 나란히 서 주길 진심으로 부탁한다"고 했다.
회견을 마친 유가족들은 희생자 159명의 영정을 품에 안고 분향소를 출발해 용산 대통령실 앞까지 침묵 행진을 벌였다.
바람에 날린 눈과 비가 얼굴을 때리고, 곳곳에 만들어진 물 웅덩이를 지날 때마다 흙탕물이 튀어 신발과 바지 밑단을 검게 물들였지만 유가족들은 묵묵히 행진을 이어갔다. 유가족들이 도중에 영정에 묻은 눈을 닦아내며 고인과 눈을 맞추거나 오열하는 모습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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