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다롭기로 유명한 뉴욕의 관객들을 홀린 작품은 서울시무용단이 유네스코 지정 세계인류무형유산 '종묘제례악' 의식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일무(One Dance)'였다. 한국 특유의 정중동(靜中動)을 선보인 일무는 사흘 연속 매진을 기록, 한국 무용의 새 역사를 썼다.
지난 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서울시무용단을 이끌며 기적을 일궈낸 정혜진(65) 단장을 만났다. 2019년부터 서울시무용단장을 맡아 '일무'는 물론 '놋-N.O.T', '감괘', '엘리자베스 기덕' 등을 무대에 올리며 한국 무용의 매력을 알려온 그는 오는 16일 임기를 마무리한다.
정혜진 단장은 "아쉽지 않을 만큼 5년 동안 열심히 했다"며 "원 없이 하고 싶던 일들을 해내서 속이 다 시원할 정도"라고 했다. "현장에서 단원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떠들며 즐겁게 일했어요. 짐을 싸며 애잔한 마음은 있지만 성취감이 커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정구호, 안무가 김성훈·김재덕과 함께 '일무'를 창작할 때 정 단장은 자신이 꼭 안무가로 함께 참여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제가 꼭 안무로 들어가야겠다고 했죠.(웃음) 그래야 현대무용을 전공한 두 안무가의 장점을 살리고, 한국적인 것들을 녹일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고생했던 만큼 세계적으로 인정받았을 때의 감동도 컸다. "처음 경험했어요. 4층 객석을 가득 메운 뉴욕의 관객들이 우레 같은 기립박수를 쏟아냈어요. 하루아침에 벌어진 일이 아니라 제가 서울시무용단에 와서 5년 동안 쌓아온 것들이에요. 서로를 믿고, 힘들고 어려워도 서로를 북돋워가면서 함께 해낸 일이죠. 제가 그 순간, 그 자리에 있어서 정말 영광스러워요."
'일무'를 무대에 올리며 단원들도 많이 성장했다. 정 단장은 "일무를 마치고 휴가기간을 보내고 마지막 작품 '엘리자베스 기덕'을 한 달만에 준비해야 했다"며 "신작인 만큼 부담감이 컸는데도 단원들이 일무 때 고생을 해서인지 바로바로 따라하고, 한번에 맞추더라"고 말했다.
"단원들을 너무 힘들게 한 부분이 있어요. 힘든 과정을 거쳤지만 단원들이 잘 따라와줬고, 상황을 잘 이겨낼 수 있었죠. 코로나 시기 제작한 '거기 아무도 없어요?'라는 뜻의 '놋-N.O.T'이 영상화돼 46개국에 상영됐어요."
정혜진 단장은 고(故) 최현 선생의 제자로, 중요 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 이수자다. 재임 중 현대무용가들과 함께 작업하며 한국무용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데 공을 들여왔다.
"한국무용에는 흉내내지 못할 찰나적 아름다움이 있어요. 순간적으로 튀어오르는 독창성도 있죠. 이런 것들이 끊어지지 않게, 더 빛을 낼 수 있게 하는 일이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
정 단장은 "한국무용의 선과 호흡은 현대무용과 정말 다르다"며 "한국 무용이 자연스럽게 움직이며 중력의 힘에 순응한다면 현대무용은 뚫고 나온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는 너무나 자극적이고 빠른 시대에 살고 있고, 한국무용을 지루하다고 느끼는 이들도 많다"며 "한국무용과 현대무용의 다른 에너지를 녹여 관객들의 마음을 잡아끄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제 책도 쓰고, 작은 소품들도 만들어 발표하고 싶어요. 한국무용기본법과 관련된 책을 쓸까 생각하고 있어요. 스승인 최현 선생님이 이름을 지어주고 가신 '최현우리춤원' 회장을 제가 맡고 있는데 선생의 그 멋들어진 춤을 아직 흉내내지도 못하고 있네요. 선생님의 춤이 워낙 찰나적이고 즉흥성이 강하거든요. 그 춤을 좀 더 개발하고 작품화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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