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취객 대문앞 데려다줬는데…경찰 2명 과실치사죄 벌금형

기사등록 2024/01/14 07:00:00 최종수정 2024/01/14 07:05:29

강북서 소속 경찰 2명 벌금 500만·400만원

작년 5월 '주취자 의료기관으로' 매뉴얼 손질

서울 주취자 병상 14개뿐…법 개정 지지부진

[제주=뉴시스] 오영재 기자 = 지난 2022년 11월께 한파 속 만취한 60대 남성을 대문 앞에 방치해 사망케 한 경찰관 2명이 1심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은 후 경징계 조치된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은 제주 노형지구대 경찰관들이 지난해 5월20일 오전 제주 노형동의 한 인도에서 자고 있는 주취자에 대해 조치하고 있는 모습. 2023.05.20. oyj4343@newsis.com 
[서울=뉴시스]박광온 기자 = 지난 2022년 11월께 만취한 60대 남성을 대문 앞에 방치해 사망케 한 경찰관 2명이 1심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은 후 경징계 조치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 사건 이후 정부는 주취자 문제 해결을 위한 새로운 현장 매뉴얼을 만들었으나 여전히 주취자 병상이 부족하고 이를 해결할 법 개정도 지지부진해 현장에선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북부지법은 지난해 11월 초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를 받는 강북경찰서 미아지구대 소속 A경사와 B경장에게 각각 벌금 500만원과 400만원의 약식명령을 내렸다.

이들은 2022년 11월30일 새벽 주취자가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해 오전 1시28분께 술에 취한 60대 남성 C씨를 자택인 강북구 수유동에 위치한 다세대주택 문 앞까지 데리고 갔다.

경찰들은 C씨가 집 안에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지 않고 현장에서 철수했고, 6시간 넘게 한파 속에 방치된 C씨는 같은 날 오전 7시께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서울에는 한파 경보가 발령돼 최저 기온은 영하 8.1도를 기록했다.

경찰은 C씨의 상태와 당시 기온 등을 근거로 사망 예견 가능성이 충분했던 만큼 구호 조치 의무를 위반했다고 보고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A경사와 B경장을 검찰에 넘겼다.

당시 피해자 유족들은 이들에 대한 처벌불원서를 냈지만 검찰은 지난해 9월 A경사와 B경장을 약식 기소했다. 이들은 벌금형을 선고받은 후 최근 경징계를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제주=뉴시스] 오영재 기자 = 지난 2022년 9월10일 오전 제주 연동지구대 경찰관들이 순찰 중 노상에 주취자가 자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귀가 조처하고 있다. 2022.09.10. oyj4343@newsis.com

이 사건 약 두 달 이후인 지난해 1월19일에도 서울 동대문경찰서 소속 경찰관 2명이 술에 취해 인도에 누워있던 남성을 둔 채 길 건너편으로 이동했는데, 승합차가 지나가며 이 남성과 충돌해 끝내 사망한 일이 발생했다.

경찰의 현장 대응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이어지자 경찰은 지난해 5월 주취자 보호조치 매뉴얼을 새롭게 손질했다. 의식이 있더라도 정상적인 판단·의사능력이 없는 주취자는 소방 등 유관기관과의 협업을 통해 응급의료센터 등 의료기관으로 옮기는 게 골자다.

김웅 국민의힘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5년간 주취자 관련 전국 112신고 건수는 465만5144건이다. 연평균 93만1028건의 주취자 관련 신고가 들어온 것이다.

문제는 주취자 관련 112 신고가 90만건 안팎을 기록하지만 주취자 병상이 있는 의료시설은 전국 49개밖에 없다는 것이다. 특히 인구 939만명이 몰려 있는 서울에는 4개 병원 14개 병상밖에 없는 상황이다.

최근 한파 등 강추위가 이어지면서 경찰은 주취자 문제에 더욱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주취자를 맡길 의료시설 및 병상이 부족하다 보니 뺑뺑이를 도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제주=뉴시스] 오영재 기자 = 제주 노형지구대 경찰관들이 20일 오전 제주 노형동의 한 인도에서 자고 있는 주취자에 대해 조치하고 있다. 해당 취객은 체류 기간이 경과한 중국인으로 조사됐다. 2023.05.20. oyj4343@newsis.com

실제 서울 종로구에 있는 한 병원은 주취자 병상이 2개인데, 지난해 병원으로 옮겨진 주취자 수는 월평균 82명에 달했다. 서울 중구에 있는 의료원도 6개의 주취자 병상에 월평균 63명이 몰렸다.

수도권의 한 지구대 소속 팀장은 "술에 취한 사람들이 길거리에 쓰러져 있다는 신고가 하루에도 수십 건씩 들어온다"라며 "의사소통이 안 될 정도로 만취한 사람은 그중에 10건 정도 되는데, 그들을 전부 병원으로 데려가다 보면 이동 시간까지 더해져 업무가 어렵고 병상 부족으로 다른 곳을 가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한 병원 관계자는 "주취자 병상이 부족한 편이라 일반 환자 병동까지도 사용하는 실정"이라며 "병원이 침상도 아니고 실제 치료가 필요한 응급환자가 아닌 단순 판단 능력이 없는 주취자를 병원으로 보내는 것이 옳은 방법인가 싶기도 하다"고 말했다.

또한 지자체와 의료기관 등 주취자 보호 관련 기관끼리의 협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장 매뉴얼은 갖춰졌으나 경찰과 소방 당국이 주취자 병원 이송을 서로에게 미루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6월 임호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주취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은 국회에 계류돼 있다. 해당 법안은 경찰을 포함한 지방자치단체와 소방, 의료기관이 역할을 분담해 주취자 이송·치료·보호시설 운영 등 협업 체계를 구축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외에도 임 의원의 발의안과 비슷한 시기에 발의된 주취자 관련 법안 3건 모두 계류 상태다.
[제주=뉴시스] 오영재 기자 = 제주 노형지구대 경찰관들이 20일 오전 제주 노형동의 한 도로에서 택시에 탑승해 자고 있는 취객에 대해 조치하고 있다. 2023.05.20. oyj4343@newsis.com

경찰관직무집행법상 주취자 발견 시 경찰관서에 보호하는 등 조치를 취할 책임은 경찰에 있는데, 소방 당국 등과 협업을 통해 조치를 취하라는 현장 매뉴얼이 내려오다보니 두 기관이 주취자 병원 이송을 서로에게 미루는 행태도 나타난다.

서울소방본부 관계자는 "경찰도 우리도 주취자를 병원으로 이송하게 되는 경우 기본적으로 협업을 하지만, 때로는 서로 자기 업무를 하기 바쁘기 때문에 이송 건에 대해선 서로 눈치를 보기도 한다"라며 "이와 관련해 법 개정 등을 통해 책임 주체를 명확하게 해줬으면 하는데 그렇지 못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정치권이 문제가 터질 때만 관심을 갖지 말고 지속적인 법 개정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경찰과 소방 당국이 서로 주취자 이송 문제를 두고 '핑퐁'하며 넘기는 건 잠깐 그 문제에 관심을 갖는 정치 문제이기도 하다"라며 "협업은 결국 올바른 가이드라인에서 나오는데 이걸 해결하기 위해선 언론에 그런 문제가 불거졌을 때만 목소리를 내는 게 아니라 지속적으로 현장 목소리를 듣고 정확한 규정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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