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를 돈으로 산다…형사공탁 재정비 필요"

기사등록 2024/01/06 08:00:00 최종수정 2024/01/06 11:31:28

현직 서울중앙지검 공판 검사의 지적

양형기준 모호하고 피해자 의사 배제

성범죄 공탁, 피해자 동의시 감형해야

[서울=뉴시스] 형사공탁 특례제도 시행 1년이 경과한 가운데 제도 전반에 대한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변론종결 이후 기습공탁으로 피해자 의견 진술 없이 감형 받거나, 재판부가 형사공탁 자체를 피해 회복의 일환으로 간주해 감경요소로 인정하는 등 부작용이 남아있다는 지적이다. 2024.01.06.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전재훈 기자 = 형사공탁 특례제도 시행 1년이 경과한 가운데 제도 전반에 대한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변론종결 이후 기습공탁으로 피해자 의견 진술 없이 감형 받거나, 재판부가 형사공탁 자체를 피해 회복의 일환으로 간주해 감경요소로 인정하는 등 부작용이 남아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피해자가 동의한 공탁만 양형 요소로 고려하고, 강력범죄의 특별양형인자에서 형사공탁을 제외해야 한다는 대안이 제시됐다. 공탁 이후 피해자의 회복 정도를 판단하기 위해 재판부의 적극적인 심리 절차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서울중앙지검 공판2부 손정아, 박가희, 임동민 검사는 대검찰청이 발행하는 '형사법의 신동향' 81호에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연구논문 '형사공탁의 운용현황 및 개선방안 연구'를 지난달 게재했다.

형사공탁이란 피해자와 합의에 실패한 피고인이 피해자의 피해 회복을 위해 법원에 돈을 맡기는 제도다. 과거엔 공탁서에 피해자의 이름과 주소, 주민번호를 적어야 해서 불법으로 인적사항을 알아내는 등 2차 가해 위험이 있었지만, 2022년 12월 도입된 특례제도는 이런 과정 없이 손쉽게 공탁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합의에 실패한 피고인의 공탁 사례가 늘고 있다.

대법원이 공개한 법원 통계 월보를 보면, 전국 법원에서 2022년 1~11월에 신청된 공탁은 16만8766건이다. 2022년 12월9일 형사공탁 특례제도가 시행됐고, 2023년 1~11월에 신청된 공탁은 18만2060건에 달한다.

감형 및 피해자 회복을 위해 돈을 맡기는 이들은 늘었지만, 얼마를 맡기면 얼마나 감형해주는지 등 구체적인 기준은 없는 상태다.

현행 양형기준에 따르면 공탁은 재산·강력·성범죄의 일반양형인자로, 재산·강력범죄의 특별양형인자로 규정돼 있다.

양형인자는 재판부가 형량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요소다. 특별양형인자는 형량의 감경, 기본, 가중 등 영역을 결정하는 데 고려되는 요소로, 일반양형인자보다 영향력이 크다. 가령 성범죄 피해자 가족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등 심각한 피해가 발생했다면, 특별양형인자로 간주해 형량을 가중할 수 있다.

양형기준을 보면, 일반양형인자의 경우 공탁 등을 통한 '상당한 피해 회복'이 이뤄졌다면 감경인자로 채택한다. 특별양형인자에 있어서는 공탁으로 인해 '실질적 피해 회복'이 이뤄져야 감경인자로 간주한다.
[서울=뉴시스] 공탁이 특별·일반양형인자에 포함돼 있다. (사진='형사공탁의 운용현황 및 개선방안 연구') 2023.01.06. *재판매 및 DB 금지

문제는 '상당한' '실질적' 피해 회복의 구체적인 기준이 없어 재판부의 자의적인 판단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양형기준은 '실질적 피해 회복'에 대해 '피고인이 피해 회복을 위한 진지한 노력 끝에 합의에 준할 정도로 피해를 회복시키거나, 그 정도의 피해 회복이 확실시되는 경우를 말한다'고 정의했다. 그럼에도 '진지한 노력' 등 모호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실제로 비슷한 사건에서 이뤄진 공탁임에도 재판부 성향에 따라 감형 여부가 달라지기도 했다.

저자들은 "유족들이 합의를 거부해도 진지한 노력 끝에 금원을 공탁한 것만으로 '처벌불원'과 동등한 효력을 인정하는 것은 사회 일반 상식에 명백히 반한다"며 "피고인이 피해자의 용서를 돈으로 살 수 있게 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저자들은 재산범죄와 달리 생명권 침해, 유족들의 정신적 고통 등 산정하기 어려운 피해를 야기하는 강력범죄의 경우, 공탁을 특별양형인자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강력·성범죄의 일반양형인자인 공탁의 경우에는 피해자가 동의하는 공탁만을 양형 요소로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경우 피해 회복 정도를 판단해야 하는데, 재판부의 적극적인 심리 절차가 필요하다는 게 저자들의 시각이다. 공탁이 이뤄졌다면 피해자를 법정에 불러 공탁을 원하는지, 피해가 실질적으로 회복됐는지 등을 직접 들어볼 필요가 있다는 취지다.

이처럼 공탁 이후 재판부의 심리가 적극적으로 이뤄진다면, 기습공탁에 의한 감형은 방지될 수 있다. 기습공탁은 변론종결 이후 선고기일 직전 공탁을 해 감형을 노리는 것을 말한다.

저자들은 기습공탁을 원천 방지하기 위해 즉각적인 공탁 사실 통지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공탁이 이뤄지면 증거 기록을 갖고 있는 법원 또는 검찰에서 공탁 사실을 피해자에게 알려 알 권리 및 재판 절차 진술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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