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인권조례 딜레마①]인권침해 사라졌나
교사 위계 앞세워 폭언, 체벌도 여전한 현실
교권침해 부작용에 교육부 대체조례 냈지만
학생 입장에서의 권리구제 절차 대신 '분쟁'
통째로 없애도 될 만큼 인권침해 해소 됐나
A학교의 다른 전공 교사가 수년 동안 학생들에게 자신의 머리 염색을 시키고 학생들에게 "너희는 버리는 카드"라 폭언을 일삼았다는 것이다. 학교는 수업료를 내야 하는 방과 후 수업을 강제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센터는 A학교에 조사관을 보내 설문을 벌였다. 전교생 394명 중 264명이 답했다. 다수 학생의 진술을 토대로 재구성한 "버리는 카드" 발언의 맥락은 이랬다.
2학년 실습시간에 질문을 받은 문제의 교사는 답변하지 않고 화를 내면서 학생들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러면서 "너희는 B학교(변경 전 교명) 시절이랑 다를 바 없다"며 "너희 취업 어떻게 할래? 너희는 버리는 카드다"라고 발언했던 것이다.
문제의 교사는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한 발언이라고 부인했다. 하지만 시교육청 조사관들은 다른 비위 사실과 '버리는 카드' 발언을 했다는 복수의 진술이 나온 점 등을 종합해 가볍게 넘기기 어렵다고 판단했고, 학교 측에 신분상 조치할 것을 정식 권고했다.
이는 지난해 11월 시교육청 학생인권옹호관이 서울 성북구 한 직업계고에서 발생한 학생인권침해 사건에 대해 내놓은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침해 등에 대한 재발방지 권고문'의 내용을 재구성한 것이다.
최근 학생·학부모의 교권침해가 주목 받으며 학생인권조례 폐지 논의가 활발하지만, 학교 현장에서 학생을 상대로 한 인권침해 문제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아무 대안 없이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면 조사와 권고 수준에 머물렀던 '권리구제 절차' 마저도 효력을 잃을 수 있다. 학생 인권침해 역시 학교의 교육활동을 침해하는 일인 만큼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쓸모없는 XX", 공개적 망신…교사가 학습권 침해도
전국 8개 시·도교육청이 공동 제작해 지난해 12월 내놓은 '학생인권 공동사례집'에는 학교에서 발생했던 다양한 실제 인권침해 사례를 기술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체벌이다. 현행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따라 직접적인 구타나 매를 드는 체벌은 금지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생활지도라는 이름으로 학생을 당구채로 구타하거나 손으로 얼굴을 치는 사례가 있다고 한다.
다른 학생들에게 특정 학생의 머리채를 잡아 흔들도록 한 초등학교 2학년 담임 교사의 사례도 실려 있다.
해당 교사는 학생끼리 머리채를 잡아 흔드는 것을 말리던 도중 자신의 뺨에 상처가 나자, 감정이 격해져 해당 학생의 머리를 잡고 흔든 뒤 '너도 똑같이 당해봐라'라고 말하면서 다른 학생들에게 시켰다는 것이다.
수업 중 조는 학생을 자리에서 일어나게 한 뒤 '쓸모없는 XX', '집에서 부모가 그렇게 가르치더냐'는 발언을 한 고등학교 교사도 있었다. 또 다른 교사는 일부 수업 분위기를 흐리는 학생을 학교폭력을 저지르는 학생으로 몰아가고 정신병원에 보내겠다고 협박했다.
또 다른 초등학교 교사가 학부모와 생활지도 프로그램을 두고 이견이 있자 해당 학부모의 자녀를 급우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망신 준 사례도 적혀 있다. 학생들 앞에서 프로그램을 하지 않겠다며 '00의 어머니(보호자)가 사과하면 하겠다'는 식으로 발언을 한 것이다.
◆교육부 대체 조례에는 구제절차 없고 '분쟁조정'
최근 학교에서는 교사의 교육활동과 정당한 생활지도가 과도하게 침해 받고, 학생과 학부모가 책임지지 않는 권리를 누리는 악성 민원인으로 돌변했다는 지적이 많다. 학생인권조례도 원인 중 하나로 꼽곤 한다.
그러나 반대로 위계에 눌려 인권침해를 당했음에도 대응하지 못하는 학생은 그나마 학생인권조례가 아니면 기댈 곳이 없다는 점도 분명한 사실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1월29일 교육부가 학생인권조례의 대안으로 제시한 '학교 구성원의 권리와 책임에 관한 조례' 예시안에는 구제 절차가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이는 생활지도 고시와 충돌한다면서 만든 조례 예시안이다.
예시안은 '구제' 대신 '갈등'과 '중재'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구성원 간 갈등이 발생하면 학교가 교육청에 설치된 교육갈등관리위원회에 중재를 요청하는 형태다. 민원도 학생이 직접 제기할 수는 없도록 돼 있다.
서울 학생인권조례를 보면, 학생은 자신의 권리를 구제 받기 위해 교육감이 임명하는 '학생인권옹호관'의 상담과 조사를 청구할 권리를 갖는다. 학생인권교육센터를 설치하고 인권침해사건에 대해 조사와 구제, 유형과 판단기준, 예방조치 등을 정하도록 규정했다.
비록 조사 결과 할 수 있는 일은 시정과 조치권고일 뿐이지만 학생들의 편에 서서 학교나 교사를 조사하는 역할을 맡는 점에서 중재가 아닌 '옹호'인 셈이다.
국민의힘이 주도하는 서울시의회는 교육부 예시안을 그대로 따 대체 조례안을 발의한 뒤 기존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려 시도하고 있다. 우필호 시교육청 학생인권옹호관은 지난 13일 "학생들의 인권침해를 직접 조사하고 권고하는 절차가 사라지는 것"이라고 했다.
시교육청에 따르면 학생인권옹호관이 설치된 2015년부터 올해 11월까지 총 7232건의 인권상담과 1454건의 권리구제 신청이 접수됐다. 특히 권리구제 신청 중 13%는 시정 권고가 나왔고 A학교도 그 중 하나다. 학교에 시정조치를 요구한 것은 376건(26%)에 이른다.
권리구제 신청은 코로나19 유행 시기였던 2020년 120건, 2021년 105건까지 줄었지만 일상회복 이후 지난해 146건, 올해 11월까지 156건으로 급증세다.
학생인권조례의 일부 내용이 교권침해로 악용돼 온 것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당장 통째로 없애버려야 할 만큼 학생인권침해가 사라졌다고 볼 수 있을까.
지난 18일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부장판사 최수진)는 서울 학생인권조례 수리 및 발의 처분 집행정지 결정을 내리면서 "효력정지로 인해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고는 명백해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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