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복지원' 손배소 첫 판결…"국가, 피해자에 145억 배상"(종합)

기사등록 2023/12/21 15:09:37

"朴정권 훈령은 위헌…이에 따른 수용도 위법"

국가 측 소멸시효 주장 배척 "중대 인권침해"

정신·육체피해, 학습권 등 고려해 위자료 산정

[서울=뉴시스]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를 배상하라며 낸 소송에서 21일 법원이 처음으로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놨다. 사진은 형제복지원 피해자협의회 회원들이 지난해 10월14일 오후 서울 중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2022.10.14. livertrent@newsis.com

[서울=뉴시스] 김진아 기자 =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를 배상하라며 낸 소송에서 법원이 처음으로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놨다.

법원은 강제수용의 근거가 됐던 박정희 정부 당시 훈령 자체를 위헌으로 보고, 이에 따른 정신적 손해에 대해서는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9부(부장판사 한정석)는 21일 오후 2시 하모씨 등 피해자 26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200억원 상당의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하고, 국가가 피해자들에게 총 145억80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하씨와 또 다른 원고 1명에 대해서는 11억2000만원 상당의 위자료 지급을 인정했다. 그 외 원고 24명에 대해서는 국가가 최소 8000만원에서 최대 8억8000만원 상당의 위자료를 각각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재판부는 형제복지원의 설립 근거가 된 박정희 정권 당시 훈령의 위법성을 지적하며,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을 명시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훈령은 법률유보 원칙, 명확성과 과잉금지 원칙, 적법절차와 영장주의 원칙에 위반하기에 위헌·위법하다"며 "훈령 발령 및 적용·집행에 이르는 일련의 국가작용은 전체적으로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며 주의의무를 소홀히 해 직무행위에 대한 정당성이 상실됐다"고 짚었다.

이어 "원고들은 형제복지원에 수용됨으로서 신체의 자유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침해당했다"며 "피고에게는 원고들의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재판 과정에서 국가 측이 주된 주장으로 내세웠던 소멸시효 완성에 대해서도 모두 배척했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국가 개입으로 이뤄진 불법행위에 대해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 원칙에 어긋난다고 판단한 점을 존중한 것이다.

재판부는 "이 사건은 중대한 인권침해에 해당한다"며 "법리에 따라 손해배상 청구권에는 소멸시효가 적용되지 않기에 피고 측 주장은 이유 없다"고도 명시했다.
[서울=뉴시스]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를 배상하라며 낸 소송에서 21일 법원이 처음으로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놨다. 사진은 피해자협의회 회원들이 지난해 10월14일 오후 서울 중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는 모습. 2022.10.14. livertrent@newsis.com

또 "헌법재판소 위헌결정에 따라 장기 소멸시효가 적용되지 않고, 단기 소멸시효의 경우에도 진실규명 결정 통지서가 송달된 날을 기준으로 기산해야 하는데, 원고들은 진실규명 결정일로부터 3년 내 소를 제기해 시효가 소멸되지 않았다"고도 부연했다.

재판부는 203억원의 소송 소가 중 원고별 수용 기간 1년당 약 8000만원을 기준으로 개별적인 사정에 대해서는 1억원 범위 내에서 가산해 위자료를 책정했다고 밝혔다. 이렇게 인용된 위자료 총액은 145억8000만원이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원고들이 강제수용되며 극심한 정신·육체적 고통을 겪었을 것으로 보이고 미성년자였던 상당수 원고들은 납치 후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학령기에 있던 원고들 대부분이 강제노역과 폭행에 시달리다 퇴소하면서 학습권을 침해당했다"고 짚었다.

이어 "이 사건 불법행위는 공권력의 허락 하에 장기간 이뤄진 중대한 인권침해 사안으로 왜곡의 정도가 매우 중대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억제할 필요성이 크다"며 "오랜 기간 배상이 지연된 점, 그간의 경제상황, 화폐가치 변화 등을 감안해 위자료를 산정했다"고 밝혔다.

이번 소송은 2022년 8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형제복지원 사건을 '국가폭력에 따른 인권침해 사건'으로 인정한 이후 나온 첫 법원 판결이다.

2021년 12월 소 제기 이후 2년만의 결과로, 소송에는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 규모로는 최다 인원이 참여한 사건으로 알려졌다.

부산 북구에 위치했던 형제복지원은 1975년 박정희 정권이 부랑인 단속 및 수용을 위해 제정한 내무부훈령 410조에 의해 만들어진 시설이다.

형제복지원은 1960년부터 1992년까지 운영됐는데, 부산시와 '부랑인 수용보호 위탁계약'을 체결한 1975년부터 1986년까지 입소자는 총 3만80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사망자 수는 기존에 알려진 552명보다 10여명 늘어난 657명으로 집계됐다.

진실화해위 결정 이후 처음으로 법원이 피해자에 대한 국가배상을 인정하면서 추후 이어질 재판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형제복지원 사건과 관련해 피해자들이 제기한 국가배상 소송은 서울중앙지법에만 2건이 진행 중이며 모두 내년 1월말 선고를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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