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경제학상 뒤플로 교수-오세훈 서울시장 특별대담
중위소득과 저소득층 가구소득 간 차액 절반 지원 형태
"투명한 규정으로 설정 잘 돼…이해하기 좋은 시스템"
"한국 같은 국가는 선별적 지원이 훨씬 더 의미 있어"
오세훈 "충분한 가치 있다 결정될 때 즈음 대선 있을 것"
"누가 됐든 '이 성공적인 결과 공약하지 않을까' 상상"
[서울=뉴시스] 권혁진 기자 = 2019년 여성으로는 두 번째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에스테르 뒤플로(51·프랑스) 매사추세츠공과대 교수는 서울시의 '안심소득' 사업을 두고 "여러 보고서를 읽어봤는데 잘 설계된 것 같다"고 평가했다.
빈곤 문제 연구에 헌신한 석학과 마주한 오세훈 서울시장은 "중간평가와 추적조사에서 유의미한 결과가 나와 새로운 복지 정책을 추구하는데 좋은 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오 시장과 뒤플로 교수는 20일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2023 서울 국제 안심소득 포럼' 개막에 앞서 특별대담을 갖고 1시간 가량 의견을 주고받았다.
압둘 라티프 자밀 빈곤퇴치연구소(J-PAL) 공동 설립자인 뒤플로 교수는 20년 간 40여개 빈곤국을 직접 찾아다니며 200개 이상의 연구 프로젝트로 저개발국 빈곤 퇴치에 힘을 쏟아왔다.
뒤플로 교수는 소득이 적을수록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안심소득에 대해 "굉장히 투명한 규정으로 설정이 되어 있고 또 매우 이해하기 좋은 시스템"이라고 평가했다.
오 시장의 추진 중인 미래형 복지모델이자 국내 첫 소득보장 정책실험인 안심소득은 저소득층 가구(중위소득 85% 이하, 재산 3억2600만원 이하)에 중위소득과 가구소득 간 차액의 절반을 지원하는 제도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와는 달리 소득이 적을수록 많은 지원을 받는 하후상박 구조로, 정해진 소득 기준을 넘어도 자격이 유지된다.
뒤플로 교수도 보편적이 아닌 선별적이라는 대목에 주목했다.
뒤플로 교수는 "보편적 기본소득은 빈곤국에 적합하다. 소득이 굉장히 적어도 사람들한테 도움을 줄 수 있고, 통계 시스템을 통해 선별적인 지원을 제대로 할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한국처럼 부유한 국가는 통계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해 사람들의 수입 등을 정부가 파악하고 있다. 이런 국가에서는 선별적 지원이 훨씬 더 의미가 있다"면서 "보편적 기본소득은 하면 정말 많은 사람한테 제공을 해야 하고, 조금씩 줄 수밖에 없다. 이 돈은 사람들의 인생에 그렇게 큰 영향을 미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날 서울시가 공개한 1단계 시범사업 참여 1523가구(지원가구 484가구, 비교집단 1039가구) 대상 1차 중간조사 결과 ▲현행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대비 복지 사각지대 해소와 높은 탈수급 비율 ▲지원가구의 근로소득 증가 ▲비교가구 대비 지원가구의 식품·의료 서비스·교통비 등 필수 재화 소비 증가 ▲정신건강 및 영양 개선 등의 유의미한 성과가 나타났다.
뒤플로 교수는 "선별적인 시스템은 기본소득보다 재분배의 효과가 있다. 소액을 전체에게 제공하는 것보다는 부의 재분배에 긍정적"이라면서 안심소득이 모든 불평등을 해소할 순 없겠지만 극복에 필요한 여러 장치 중 하나가 될 수는 있다고 분석했다.
오 시장은 경제적 격차 완화를 넘어 사실상 반으로 쪼개진 국내 정치 양극화 해소에도 보탬이 될 수 있다는 신념으로 안심소득을 추진했다고 밝혔다.
"기본소득 실험은 핀란드에서 이미 상당히 정교하게 이뤄지고 있었는데 안심소득 같은 형태의 소득 보장 실험은 어느 나라에서도 제대로 한 적이 없다는 점이 굉장히 의아했다"는 오 시장은 "다시 일할 수 있는 위치가 된다면 반드시 정교하게 디자인을 해보겠다는 욕구를 느꼈는데 마침 서울시장에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와서 공약을 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오 시장은 이어 "공약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오늘과 같은 기회가 올 것이라는 생각을 못했다. 이 소득보장 실험이 내가 예상한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해도 한풀이는 한 번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웃었다.
서울시에 따르면 1단계 시범사업 지원 484가구 중 현행 복지제도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한 가구 비율은 262가구(54.1%)로, 안심소득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 비해 저소득층을 더욱 폭넓게 지원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지원가구 중 23가구(4.8%)는 가구소득이 중위소득 85% 이상(2023년 11월 기준)으로 증가해 더 이상 안심소득을 받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원가구의 21.8%인 104가구는 근로소득이 늘었고, 이중 49가구는 월 100만원 이상 증가했다.
오 시장은 "만일 안심소득 사업이 성공적이라면 전국적으로 어떻게 확신시킬 것인가"라는 뒤플로 교수 질문에 "너무 행복한 상황을 가정한 질문이라 답변이 쉽지 않다"면서 차기 대통령 선거를 거론했다.
오 시장은 "1년 반 뒤 정말 바람직한 복지제도라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결정될 때 쯤에는 대선이 있을 것이다. 누가 됐든 '이 성공적인 실험 결과를 공약하지 않을까'라는 재미있는 상상을 해본다"며 "(예산이) 감당 가능한 정도라는 게 지금으로서는 많은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 문제만 해결이 된다면 전국 확산은 그렇게 어려운 문제 만은 아닐 것"이라며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대담 말미에는 외국인 노동자 최저임금 적용 관련 이슈도 언급됐다.
뒤플러 교수는 "어떤 곳에서 일하든 국적에 관계없이 동일 조건을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동일한 기회와 의료 서비스 등도 같이 적용돼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뒤플러 교수는 좀 더 정확한 설명을 해달라는 오 시장 요구에 "여러 사례들을 통해 외국 노동자들이 해당 국가의 기존 노동자들과 경쟁하지 않고, 오히려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 경우가 많다"면서 "외국인 노동자들은 그 국가의 노동자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들을 하고, 사람들이 살지 않기 원하는 곳에서 일을 하고 직종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경쟁이 되지 않고 또 이들은 대부분 사람들이 살지 않기를 원하는 곳에서 살면서 일을 하기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장시간 대담을 마친 후 두 사람은 각자의 저서를 서로에게 선물했다. 오 시장은 미래(미래를 보는 세 개의 창)를, 뒤플로 교수는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을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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