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7년(세종 29년) 정종소 문과 중시 시권
한국국학진흥원은 1447년(세종 29)의 문과 중시 시권 원본 2건을 온전한 형태로 발견했다고 18일 밝혔다.
임진왜란 이전 문과 시권은 현재까지 그 사례가 12건 밖에 확인되지 않을 정도로 희소성이 높은 자료이다.
그동안 알려진 가장 이른 시기의 문과 시권은 보물로 지정된 1507년(중종 2년) 충재 권벌(1478~1548)이 작성한 문과 전시(殿試) 시권이다.
이번에 발견한 시권은 이보다 60년 앞선 것으로, 시권 원본을 온전한 형태로 발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시권의 주인공은 세종대 문신 정종소(鄭從韶)이다.
본관은 영일이며, 증조대인 고려말 경상도 영천에 입향했다.
부친 정문예는 포은 정몽주와 팔촌 사이였다.
정종소는 다섯 명의 형제가 있었는데 이 중 3명이나 문과에 급제할 정도로 당대에 큰 명성을 얻은 집안이었다.
정종소 현손은 호수 정세아(鄭世雅)로 임진왜란 당시 큰 공을 세운 의병이다.
본 시권은 바로 정세아 집안인 경북 영천 영일정씨 호수종택(湖叟宗宅)에서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한 자료이다.
정종소는 1447년(세종 29년) 문과 중시에 응시해 을과 삼등 제1인으로 급제했다.
이들 문집에도 당시 과거시험 답안 내용이 수록돼 있지만 실물이 남아 있는 경우는 없다.
한국국학진흥원에 소장된 정종소 문과 시권은 보존상태도 매우 양호해 내용을 파악하는 데 전혀 무리가 없다.
이 자료는 그간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15세기 문과 중시의 유일한 실물 사례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매우 높다.
특히 당시 시권의 형태적 특징을 분석할 수 있는 중요한 원본 자료이다.
해당 자료는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성호 교수가 한국국학진흥원 자료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발견했다.
내용을 치밀하게 분석해 한국국학진흥원 등재학술지 '국학연구' 52집에 수록했다.
한국국학진흥원은 현재 국내 최다인 62만여 점에 이르는 민간기록유산을 보유한 기관이다.
최근 소장자료를 보다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RFID를 도입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아직 빛을 보지 못한 가치 있는 자료의 추가적인 발굴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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