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망 마비 사태 원인 8일 만에 장비 고장 최종 결론
장비 왜 고장났는지는 몰라…"美제조사도 답변 못 해"
대기업 공공 IT사업 참여 허용 검토 등 재발방지책 마련
공무원 전문성 부족 및 유지·보수 예산 부족 지적되기도
"계획적 구축 감리, 장애 감지 등 철저한 운영 감리 필요"
라우터는 서로 다른 네트워크를 연결해주는 장치로, 라우터에 통신선을 꽂는 연결단자인 포트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휴대폰 충전기 포트가 망가져 충전이 제대로 안 되는 경우와 유사하다.
정부는 행정망 먹통 사태 초반에는 L4스위치를 원인으로 지목했다가 이후 라우터 포트 문제라고 말을 바꿨다. 사태 이후 8일 만에 장애 원인을 발표했지만, 라우터 포트 불량이 왜 생겼는지는 아직까지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2016년 도입한 장비여서 노후화로 볼 수도 없다는 것이다.
정부는 해당 장비 제조사인 미국 시스코(CISCO)도 그 이유를 모른다며 특수한 장애라는 입장이다.
이재용 국가정보자원관리원장은 지난달 29일 지방행정전산서비스 장애 복구 관련 행정안전부 정책설명회에서 라우터 포트 불량 원인에 대해 "제조사인 미국 시스코에 문의해 놨지만 왜 불량이 났는지 그쪽에서도 답변을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는 당초 L4스위치를 원인으로 지목했을 때도 이 장비에 왜 장애가 발생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했다.
정확한 원인은 미궁에 빠진 상황에서 정부는 재발방지책을 발표했다. 오래된 장비 전수 점검에 착수하는 한편, 신속한 복구 등 장애 발생 시 매뉴얼을 보완하겠다는 방침 등이다.
이 가운데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대책은 '기술력 높은 기업의 참여를 위한 공공 정보화 사업의 사업 대가 현실화'다.
고기동 행안부 차관은 지난달 25일 브리핑에서 "기술력 높은 기업 참여를 위한 공공 정보화 사업의 사업 대가 현실화 등도 추진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사실상 공공 소프트웨어(SW) 사업에 대기업 진입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정부는 중소 소프트웨어 업계 육성을 위해 2013년부터 대기업의 공공 IT사업 참여를 제한하고 있다. 대기업은 국가안보와 신기술 분야에서만 예외적으로 참여가 가능하다.
하지만 이번 사태 이후 중소기업의 유지·관리가 문제 아니냐는 지적이 고개를 들면서 나온 대책이다. 현재 정부는 공공 소프트웨어 사업에 대기업이 참여하는 방안을 관련 부처와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기업 참여를 허용하는 금액 범위는 현재 논의 중으로, 700억원 이상의 공공 IT사업 참여를 허용하는 안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대기업 참여가 곧 안정성 담보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비판도 있다. 소·중견 기업들이 그간 역량을 쌓아왔고, 오히려 대기업은 참여 제한으로 공공 IT를 담당해왔던 전담 인력이 빠져나간 상황이라 오히려 대응이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조준희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 회장은 "중소기업이 맡아서 이번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며 "사고 원인으로 지목된 라우터 고장과 중소기업, 대기업이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오히려 이번 사고의 원인을 공무원의 전문성 부족과 공공시장 전산장비 유지보수 예산 부족 등을 꼽는다. 우선 공무원은 2~3년 마다 다른 부처로 이동하기 때문에 IT 같은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 이번 같은 사태가 발생해도 신속한 대처 능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디지털 정부의 유지·보수 예산을 크게 줄인 것도 문제로 꼽힌다.
기획재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정부예산안에 따르면 내년 행안부 디지털 정부혁신 관련 예산은 7925억원으로 올해보다 200억원 이상 늘었지만, 유지·보수 사업은 일제히 감액됐다.
전자정부 지원 사업은 올해 493억원에서 내년 126억원으로 367억원삭감됐다. 행정정보 공동 이용 시스템의 유지·보수 예산은 올해 127억원에서 내년 53억7000만원으로 줄었다.
익명을 요구한 모 교수는 "통상 정부 발주 IT 사업들이 시스템 구축에만 관심 있고 정작 운영에 대해선 소홀한 경향이 있다"며 "결과적으로 구축에 따른 운영까지 함께 봐줘야 하는데 시스템 운영과 유지·보수 분야는 홀대하니, 이 같은 일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관련 업계 관계자도 "건축에서도 원래 설계한 대로 시공이 되는지 감리를 통해 확인하는데, 감리가 제대로 가동되지 않으면 그야말로 '순살아파트'가 돼 버리는 것"이라며 "정부 시스템도 규모가 큰 시스템이다 보니, 계획적인 구축감리와 이후 철저한 모니터링 장애 감지 등을 위한 운영 감리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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