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원 국립국어원 원장은 공공언어부터 일상언어까지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외래어를 우리말로 순화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지난 23일 서울 강서구 국립국어원에서 만난 장 원장은 "우리말로 쉽게 쓸 수 있는 말도 불필요하게 외래어를 쓰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마다 외래어나 외국어 표현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정도는 다르다. 젊은 세대에겐 익숙하지만, 나이 든 분들에겐 어려울 수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세대간 단절이라는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며 "특히 공공언어는 공적으로 여러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쉽고 친숙한 우리말을 쓰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언박싱'은 '개봉기'라고 쉽게 말할 수 있어요. 그런데 마치 전문 용어인 것처럼 쓰이고 있죠. 홈쇼핑에서 옷을 팔 때도 '치마'라고 하면 되는데 '스커트'라고 하고, '파란색'을 '블루'라고 하는 등 우리말이 있는데도 마치 그게 더 좋은 말인 것처럼 쓰는 경우가 잦아요."
국립국어원은 전문가로 구성한 위원회인 '새말모임'을 통해 어려운 외래어를 우리말로 다듬는 작업을 정기적으로 하고 있다. 국어학자를 비롯한 다양한 전문가와 언론계, 대학생 등을 포함해 16명으로 이뤄져 있다. 2주에 한번씩 회의를 열고 외래어를 심사해 2~3개의 우리말을 제안한다. 이후 세대·지역·성별 등을 고려한 2500여명을 대상으로 국민 수용도 조사를 거쳐 그 결과를 반영해 최종적으로 이를 공포한다.
이 같은 과정을 거쳐 '도어스테핑'을 '출근길 문답'이나 '약식문답'으로, '베이비 스텝'을 '소폭 조정'으로, '오리지널 콘텐츠'를 '자체 제작물' 등으로 발표했다.
장 원장은 "말은 자주 접하고 사용하는 만큼 익숙해지기에 외래어, 외국어 표현이 정착되기 전 신속하게 우리말로 순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코로나19 때도 '팬데믹', '언택트, '코로나 블루', '부스터샷' 등 외래어가 굉장히 많이 들어왔지만 '감염병 세계적 유행', '비대면', '코로나 우울', '추가 접종' 등 우리말로 바꿔 잘 정착됐다"고 말했다.
수많은 외래어를 사용하는 데 비해 우리말 순화 작업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장 원장은 "인력이나 제도, 예산 등의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2주일에 4~5개 정도 순화하는데 그보다 새로 들어오는 말은 너무 많아요. 그래서 언론에 노출이 많이 되는 단어를 우선적으로 다루고 있어요. 사실 상시적으로 새로운 외래어가 나오면 바로 우리말로 바꿔주는 게 좋겠죠. 절차를 거쳐 공식화하지만, 2주나 한 달도 길어요. 뉴스를 통해 이미 퍼지거든요. 온라인을 통해 절차를 압축하는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해요."
정부 부처나 공공기관에서 발표하는 정책이나 자료도 외래어가 혼용된 경우가 많다. 공공언어를 국민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행정기관에 국어책임관을 두도록 했지만, 사실상 겸직 형태로 효과가 미비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전문가를 지정해 운영하는 게 아니다 보니 역할을 충분히 못하는 아쉬움도 있어요. 현재 법제처에는 국어원 연구사가 한 명 파견돼 우리말 자문 및 교정 업무를 하고 있죠. 국민들과 밀접하게 소통하는 부처나 공공기관에 국어원 전문 인력을 파견한다면 언어 수준이 올라갈 거라고 생각해요."
"언론들이 외래어를 가르치고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우리말로 뜻풀이를 다 해놓고 외래어까지 쓰는 경우가 많죠. '장마철에 비가 많이 와서 도로가 파이는 포트홀이 생겼다', '동물들이 치여 죽는 로드킬이 발생했다', '0.25% 인상하는 베이비스텝을 단행했다'는 등으로 말해요. '동물들이 길에서 치여 죽었다', '이자율이 0.25% 인상했다'로 쉽게 말하면 되거든요."
외래어가 더해진 신조어도 상당수 많다. 장 원장은 신조어를 배척할 필요는 없지만, 비속어나 인격을 비하하는 말은 자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로운 말이 만들어지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에요. 그중 사람들이 많이 쓰면서 정착한 말은 국어사전에 올라갈 거고, 아니면 도태되겠죠. 다만 신조어도 인격을 무시하거나 비속어를 만들어 내는 말은 쓰지 않아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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