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한국판 롤렉스는 없을까"…IMF로 '삼성시계' 사라졌지만

기사등록 2023/11/05 11:00:00 최종수정 2023/11/08 08:33:31

[명품시계의 시간②] 삼성, 세이코와 합작해 '삼성시계' 만들기도

IMF로 韓시계 고비…오리엔트·로만손 이어 티셀·해리엇 명맥 계속

티셀 파일럿 B타입. (사진=티셀 홈페이지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주동일 기자 = 우리나라 시계 산업은 19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성장했다. 일본 오리엔트(Orient)·세이코(Seiko) 등과 제휴해 시계를 생산하거나 직접 브랜드를 만들면서 경쟁력을 키웠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로 산업계 전반이 타격을 입으면서 시계 산업도 축소됐다.

2000년대 이후 소비 패턴까지 바뀌면서 국내 시계 산업의 영광은 더 흐려졌다.

다만 최근 티셀(Tisell)과 헤리엇(Harriot) 등 시계 애호가들의 주목을 받는 국내 브랜드가 늘고, 독립 시계 제작자들도 등장하면서 '제2의 K시계 전성기'가 올 수 있다는 기대감도 조금씩 나오고 있다.

국내 시계 산업은 1960년대 산업화와 함께 시작했다. 특히 시계의 구동 장치인 무브먼트를 케이스에 넣고 조립하는 작업은 당시 우리나라의 새로운 먹거리로 떠올랐다.

1959년 세워진 영명산업주식회사는 일본 시계 브랜드 오리엔트와 손을 잡고 일본에서 들여온 시계 부품들을 조립했다. 1969년 아예 오리엔트시계공업주식회사로 사명을 변경한 뒤엔 일본에서 들여온 부품으로 직접 시계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미 1967년 우리나라의 최초 손목시계를 만든 오리엔트는 1972년 무브먼트를 자체 생산하기 시작했다.

1981년 국내 첫 고압 방수시계에 이어 1984년 훗날 삼성전자의 스마트워치와 상표권 분쟁까지 하는 시계 브랜드 '갤럭시'를 만들며 예물 시장에도 나섰다.

오리엔트의 성장과 함께 시계 산업에 나서는 기업도 늘었다. 1967년까지 25개에 그쳤던 시계 제작 업체는 1977년 70개 이상으로 급증했다.

삼성도 시계 사업에 뛰어들었다.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선대회장이 부회장에 올랐었던 1983년, 삼성은 세이코와 합작해 '삼성시계'를 세웠다.

삼성은 1974년 한국반도체를 인수해 국내 시계 업체 '아남시계'가 우리나라에서 첫 전자시계를 만든 1975년부터 전자손목시계용 집적회로 칩을 개발해왔다.
해리엇의 KARI. (사진=해리엇 홈페이지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삼성시계는 '돌체' '카파' 등의 시계를 만들고 1980년대 우리나라 시계 시장에서 빠르게 이름을 알렸다. 특히 우리나라 9시 뉴스의 시간 알림 광고인 시보 방송을 담당하며 소비자들에게 각인됐다.

삼성시계는 이후 스위스 시계 회사 론진(Longines)과 기술 제휴를 맺고, 스위스 시계 회사 하스앤씨에를 인수하는 등 시계 사업을 공격적으로 확장했다.

한편 1988년엔 김기문 회장이 토종 시계 기업 로만손까지 창립하며 시계 산업은 전성기를 맞았다. 로만손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Made in Swiss(메이드 인 스위스)' 표기를 앞세워 해외로 진출했다.

해당 표기는 시계 원가 중 일정 액수 이상에 달하는 부품을 스위스에서 생산하고, 스위스에서 조립하는 등의 조건을 충족시키면 합법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국내 시계 산업은 1997년 외환위기로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삼성시계는 퇴출기업으로 지정됐고, 1998년 종업원지주회사로 계열분리하게 됐다. 오리엔트는 바이오 기업 '바이오제노믹스'에 인수된 뒤 2006년에야 재분할됐다.

2000년대 이후엔 외환위기로 중고 시장에 헐값에 풀린 명품 시계들과 외국 시계를 찾는 소비자의 증가, 유행 변화 등으로 국내 시계 산업은 전처럼 전성기를 되찾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우리나라엔 티셀과 해리엇을 비롯한 마이크로 브랜드가 등장하면서 국산 시계의 명맥이 다시 이어지는 분위기다. 특히 2011년 세워진 티셀과 2016년 런칭한 해리엇은 각기 다른 전략으로 입지를 다지고 있다.
워치메이커 유민훈씨가 만든 카브드 피스(Carved Piece). (사진=MINHOON YOO 홈페이지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티셀은 롤렉스와 IWC 등 유명 브랜드의 인기 모델과 비슷한 '오마주 시계'를 만들머 마이크로 브랜드로서의 정체성을 뚜렷하게 세우고 있다.

해리엇은 한국 시계라는 타이틀을 걸고 항공우주연구원 시계나 남북정상회담 기념시계 등을 생산한다.

혼자 스튜디오를 세워 직접 시계를 생산하는 장인들도 늘고 있다. 우리나라 전통 옻칠로 다이얼을 장식한 '나전칠기' 시계를 만들어 세계 최대 시계 박람회 바젤월드에 아티아(Artya)와 함께 출품한 'MOI 워치'의 김한뫼 대표 등이 대표적이다.

이 외에도 지난해 뉴욕타임스와 세계 최대 시계 미디어 호딩키 등에 소개된 독립시계 제작자 유민훈(MINHOON YOO)씨, 시계 뿐 만 아니라 다양한 오토마타(태엽을 활용해 작동하는 조형물)를 만드는 현광훈 작가 등이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jdi@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