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완성형이 아닌 진행형 같은 전시가 열렸다. 실험적이고 난해한 마치 비엔날레에서 만나볼 수 있는 작품들로, 예술과 미술 세계를 넓히고 있다.
서울 아트선재센터(관장 김장언)에서 여는 조각가 '정지현:행도그' 개인전과 아티스트이자 작곡가인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타렉 아투이의 한국 첫 개인전이다. 미술관과 갤러리의 경계에 있는 아트선재센터는 국내에서 쉽게 만나볼 수 없는 현대미술 기획전을 주로 다뤄 세계의 다양한 현대미술의 흐름을 보여준다. 아트선재센터는 "국내 관람객들의 문화 수준이 높아져 일반적인 사고 방식을 해체하는 작가 소개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작가 세계를 탐구하고 함께하는 전시 기획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조각가 '정지현: 행도그'전
조각전 같지 않는 전시는 용도 폐기된 산업재를 발견하는 것에서 출발했다. 전시 제목 ‘행도그(hangdog)’에 의미가 담겼다. ‘수치스러운’, ‘낙심한’, ‘풀이 죽은’ 상태를 나타내는 형용사로, 클라이밍에서는 등반하다 추락했을 경우 매달린 자리에서 잠시 쉬었다 다시 등반을 이어가는 것을 뜻하는 용어로 쓰인다. ‘행’과 ‘도그’의 결합으로 개별 단어가 가진 본래 의미와는 다른 상황을 일컫게 된 ‘행도그’의 구조와 쓰임처럼 이번 전시에서 ‘행도그’는 사물의 원본에서 멀어지고 있는 정지현의 작업 상태와 구성 방식을 지시한다.
도시에 놓인 사물의 상태 그대로를 캐스팅해 물체의 형만 옮겨와 작업의 뼈대로 삼기도 하고 본을 뜨기 적합한 재료인 유토로 몰드를 만들거나, 알루미늄 망으로 사물을 감싼 후 손으로 꾹꾹 눌러 표면의 굴곡을 복제하기도 했다.
'오른쪽 페기'(2023)와 '왼쪽 페기'(2023)는 폐차장 인근 길가에 적재된 자동차 폐기물을 아이폰으로 3D 스캐닝한 후, 납작해진 데이터에 양감을 주어 3D 프린팅한 작업이다. 조각 작품이거나 설치 작품이라고 하기엔 어설프고 엉성한 작품들이지만 이런 생각들을 깨트리는 전시다. 도시 환경에 부유하는 부산물과 버려진 폐기물을 가져와 고정되지 않은 낯선 형태로 유동하게 하는 작가의 만들기 방식이 '새로운 조각'으로 새로운 자리를 찾고 있다. 정지현 작가는 조각계의 권위있는 김세중청년조각상(2023)을 수상했다.
◆타렉 아투이 첫번째 개인전
레바논 베이루트서 출생하여 현재 프랑스 파리에서 거주하며 작업하는 아티스트이자 작곡가인 타렉 아투이(Tarek Atoui)의 한국 첫 개인전은 김선정 아트선재센터 디렉터와 인연이 이어졌다. 김 디렉터가 광주비엔날레 대표로 활동하면서 만나 작가로 이번 전시는 4년 만에 한국에서 여는 첫 전시다.
'타렉 아투이: 더 레인'를 타이틀로 펼치는 전시는 4대 원소 중 ‘물’에 집중한 프로젝트다.사운드 퍼포머, 음악가 그리고 작곡가로 활동하는 타렉 아투이는 세계 여러 전통악기 및 음악사 탐구를 바탕으로 직접 제작한 전자악기를 통해 소리를 인식하는 일반적인 사고방식을 해체한다.
이번 전시는 2019년부터 연구되어온 한국의 전통악기, 기물들과 소리의 관계를 물(水)을 매개로한 시적인 설치 작업이다. 한국의 장인들과 협력했다.우리 고유의 악기인 장구와 북을 가업으로 3대째 계승, 발전시켜 오고 있는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12호 서인석 악기장, 30년 이상 전통 제작 방식을 고수하며 실생활에 옹기를 접목시키는 정희창 옹기장, 전통과 현대를 접목한 도자 작품을 제작하는 젊은 도예가 강지향 등과 만들어낸 작품들로 소리의 합주를 이룬다.
청자, 옹기, 한지, 짚 등과 함께 무영고, 대북, 장구, 꽹과리, 징 등의 전통 타악기들을 해체한 아투이만의 악기들이 좌판처럼 펼쳐져 있다. 천장에 메주처럼 매달린 스피커 등 다채롭고 다양하게 소리를 내게 하는 작품들로 산만하지만 들여다볼수록 신기한 작가의 '소리 탐구'에 빠져들게 한다.
소리를 경험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하는 이 전시는 두 아이의 아버지이기도 한 타렉 아투이의 자상함과 섬세함이 스며있다. 소리의 진동을 느껴 볼 수 있는 어린이들을 위한 워크숍과 퍼포먼스도 진행한다. 관람객이 직접 악기들을 연주해볼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됐다. 전시는 2024년1월21일까지.
◎공감언론 뉴시스 hyun@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