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이라는 뜻의 데이프, 본명 아닌 폭발물 전문가
2000년대 초 하마스 군사지도자 피살 뒤 후계자 올라
이스라엘 암살 시도로 한쪽 눈 잃고 부인과 아들 사망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이스라엘이 하마스의 운둔 군사 지도자 모함메드 데이프를 암살하려고 여러 번 시도했으나 실패했다고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지난 20여 년 이스라엘이 데이프를 암살하려 시도하면서 그를 불구로 만들고 그의 부인과 어린 아기를 살해했다. 하마스의 7일 이스라엘 공격은 그의 복수인 셈이다.
데이프가 지시한 이즈 아드-딘 알-카삼 연대의 잔혹성은 전쟁에 익숙해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도 충격적이었다.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을 학살했고 가자 인근 마을 주민들을 학살하고 어린이와 노인들을 인질로 납치했다.
데이프 휘하의 카삼 연대가 단순한 민병대가 아님을 보여줬고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에 지상군 투입을 앞두고 있다. 카삼 연대는 이스라엘군이 경고 없이 민간인들을 공격할 경우 인질들을 처형할 것이라고 위협해 이스라엘이 대응 수준을 고민하게 만들었다.
데이프는 예전부터 이스라엘의 제거 표적이 1순위였다. 이스라엘이 11일 그의 가족이 사는 집을 공습해 동생 부부와 아이들이 숨졌다고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매체가 보도했다.
이스라엘 군정보국 연구책임자 출신 요시 쿠페르와서는 “데이프만이 아닌 하마스 지도부 전체를 제거할 것”이라면서 “데이프가 오판했다. 자신이 얼마나 야만적인지를 입증했다”고 강조했다.
◆팔레스타인 주민들 사이에 신화적 존재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 카삼연대의 은둔 사령관인 데이프는 거의 신화적 존재다. 하마스 내부에서도 이스라엘의 공격을 피해 수십 년 동안 숨어 지내온 데이프를 직접 만난 사람이 거의 없다.
암살을 피해 주거지를 자주 옮겨다는 그는 여러 가지 별명을 사용한다. 아랍어로 “손님”이라는 뜻의 데이프도 그의 본명이 아니라 늘 옮겨 다니는 사람이라는 별명이다. 미 정부는 그의 본명이 모함메드 알-마스리로 밝히고 테러리스트로 지목한 상태다.
가자지구의 알-아즈하르 대학교 정치학자 음카이마르 아부사다는 “데이프는 유령”이라면서 “알 카삼의 사령관이라지만 우린 그가 누군지 모른다. 그가 이번 공격 작전의 장본인”이라고 했다.
가지 하마드 하마스 대변인은 카삼 연대 사령관에 대해 “데이프가 이번 공격으로 모두의 존경을 받는다”고만 밝히고 더 이상 언급하길 거부했다.
지난 7일 오전 하마스 전투원들이 이스라엘 보안 장벽을 넘은 뒤 아랍 방송들이 그림자 모습의 데이프가 사무실에 앉아 녹음된 성명을 발표하는 장면을 내보냈다. 데이프는 카삼 연대가 공격을 시작했고 “적이 대가를 치르지 않고 흥청댈 수 있는 시기가 끝났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했다.
◆가자지구에서 태어나 군사 지도자로 성장
미 정부에 따르면 데이프는 가자지구 남부 도시 칸 유니스에서 1963~1965년 사이에 태어났다. 1980년대 이집트 무슬림 형제단의 분파로 생겨난 하마스 초기 군사조직에 가담했다. 카삼 연대의 이름은 20세기초 프랑스 및 영국의 식민 통치와 이스라엘 국가 창설에 맞선 시리아의 이슬람 성직자 이즈 아드-딘 알-카삼의 이름을 딴 것이다. 그는 1935년 영국군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이스라엘에 따르면 데이프는 ‘기술자’ 알려진 폭발물 전문가 야햐 아야시로부터 폭발물 제조기술을 배웠다. 1990년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합의인 오슬로 협정을 무산시키기 위해 수십 명을 살해한 일련의 버스 폭파사건에 가담한 혐의로 이스라엘이 테러리스트로 지정했다.
2000년대 초 이스라엘이 카삼 연대의 사령관을 암살한 뒤 카삼 연대 사령관이 됐다. 2002년 이스라엘 보안군이 가자 지구에서 데이프가 탄 벤츠 차량을 미사일 2발로 공격해 사망했다고 발표했으나 4년 뒤 눈 한쪽을 잃었을 것이라고 정정했다. 4년 뒤 이스라엘 F-16 전투기가 가자지구 북부 가자 시티의 그의 주택을 폭격해 그의 가족 9명을 살해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는 목숨을 보전했으나 크게 부상한 것으로 여겨졌다.
이스라엘군은 데이프가 로켓 제조에 집중했고 이번 공격이 이 로켓이 사용됐다고 밝힌다. 이스라엘은 2008년에도 무차별적인 로켓 공격을 차단하기 위해 가자지구에 지상군을 투입했다. 당시 하마스 전투원들은 거의 훈련도 받지 못한 상태로 궤멸했다.
◆데이프 휘하 카삼 연대 정예화
그러나 2014년 이스라엘이 다시 가자에 진입했을 때는 달랐다. 데이프 휘하의 하마스가 가자지구를 봉쇄하는 장벽과 울타리 지하로 여러 개의 터널을 뚫어 이스라엘 내부로 침투하는 것이 드러났다.
지난해 새로 창설된 하마스 특공대가 가자 지구 안팎에서 여러 차례 공격을 시도했다. 하마스의 내부 통신 감청이 어려워진 반면 카삼 연대가 이스라엘 군대의 이동을 잘 파악했다.
당시 일주일 동안 휴전한 직후 이스라엘이 재차 데이프 암살을 시도했으나 폭격으로 그의 부인과 7살짜리 아들만 살해했다. 이들의 장례식에서 군중들이 하마스 깃발을 흔들며 복수를 다짐했다.
데이프는 2년 전 운둔에서 벗어나 예루살렘이 팔레스타인 땅이라고 방송에서 공공연히 주장할 때까지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당시 하마스가 가자에서 이스라엘에 로켓을 발사해 11일 동안 분쟁이 지속됐다.
이스라엘 레이히먼 대학교 디나 리스냔스키 교수는 이스라엘이 지속적으로 암살을 시도해온 때문에 활동이 제약되는 데이프가 하마스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은 크지 않다고 밝혔다. 하마스가 가자지구와 서안 지구의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 방송으로 메시지를 내보내면서 데이프를 신화로 만들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스라엘군에서 팔레스타인 정보 장교를 지낸 마이클 밀슈테인 텔아비브대 교수는 카삼 연대가 이스라엘과 전투를 통해 두 가지를 배웠다고 지적했다. 자신들이 다음 번 전투를 벌여야할 당사자라는 점과 가자 지구가 아닌 이스라엘 땅을 빼앗아 팔레스타인 국가를 창설해야 한다는 점이다.
밀슈테인 교수는 그러나 데이프가 민간인을 너무 많이 살해해 이스라엘의 강력한 대응을 촉발한 것이 실수라고 지적했다.
하마스 정치 부분 책임자의 전 보좌관 아메드 유세프는 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폭력 사용에 반대하는 와중에 데이프가 “이스라엘은 전쟁에서 패배하지 않으면 절대로 물러서지 않는다”며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 존엄을 지키고 국가를 창설하기 위한 싸움에 나서라고 촉구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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