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혁신개발사례 방문해 지나친 국내규제 아쉬움 피력
"미래지향적이지 않은데 금과옥조처럼…시민 삶 도움 되나"
[뉴욕=뉴시스] 권혁진 기자 = "우리나라는 이런 역사적인 건축물 앞에 아무 것도 지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제일 좌절을 느끼는 부분입니다."
북미 출장 중인 오세훈 서울시장은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의 '원 밴더빌트'와 '그랜드 센트럴터미널'을 둘러본 뒤 국내의 지나친 문화재 규제 방침에 아쉬움을 피력했다.
미국의 사례에 비춰볼 때 우리나라도 충분히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건축물을 만들 수 있지만, 지나치게 보수적인 규제에 엄두조차 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2020년 9월 개관한 원 밴더빌트는 93층짜리 초대형 건물로 427m의 높이를 자랑한다. 335m에 자리한 전망명소인 서밋에서는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센트럴 파크를 눈에 담을 수 있다.
원 밴더빌트가 100층에 육박하는 건물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인근 건물 바워리 세이빙의 용적 약 9750㎡의 공중권을 양도받았기 때문이다.
공중권은 공중의 권리를 사고파는 것을 의미한다. 20층짜리 건물을 지을 수 있는 자리에 10층짜리 건물을 올렸다면 나머지 10층에 대한 권리를 다른 건물에 양도할 수 있다. 국내법상으로는 허용되지 않는다.
93층 초신식 건물의 지하는 아이러니컬하게도 100년이 넘은 지하철역인 그랜드 센트럴터미널로 연결된다. 1913년 개관한 그랜드센트럴터미널은 44개의 승강장과 67개의 선로로 구성된 세계 최대 기차역으로 하루 이용객만 75만여명에 달한다.
미국 내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인 고층 건물과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터미널이 뉴욕 한복판에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셈인데, 국내에서는 사실상 구현 불가능한 일이다.
오 시장은 "우리나라에서는 그랜드 센트럴파크 자체가 문화재이기에 이런 건물(원 밴더빌트)이 들어올 수가 없다"면서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봤지만 우리나라에는 역사적인 건축물 앞에 아무 것도 지을 수 없다"고 했다.
그렇다고 미국이 고층 건물로 100년 역사와 전통을 훼손한 것은 아니다. 접근 방식이 달리 했을 뿐이다.
오 시장에 따르면 뉴욕시 문화재 보호 담당자들은 원 밴더빌트 건축 계획 심의 당시 "어떤 형식으로든 그랜드 센트럴파크에 존경의 마음을 표현하고, 그것을 흔적으로 남겨라"는 조건을 제시했다. 이를 지킨다면 그랜드 센트럴파크에 손을 대도 좋다고 했다.
이에 건축가들은 좀 더 비싼 재질과 약간 구부러진 형태의 디자인을 활용하는 식으로 경의를 표했다. 오 시장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개발 방법론을 제시하는 이곳 사람들의 혜안을 여기서 볼 수 있었다"고 감탄했다.
"이런 건축물을 짓는 것은 엔지니어링 기술만 발달하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디자인을 유리하게 할 수 있는 능력만 생기면 지을 수 있다"는 오 시장은 다시 현실로 돌아와 "문제는 그런 것들이 제도적, 법적으로 막혀 있는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이어 오 시장은 "'거리를 엄청나게 벌려야 한다', '역사적인 유적에서는 나무 위로 올라가면 안 된다'는 전혀 미래지향적이지 않은 규제를 만들어두고 그걸 금과옥조처럼 지키는 것이 과연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도움이 될 지 깊이 고민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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