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오리지널 드라마 '무빙' 최근 인기
한국형 히어로물 내세워 약 500억원 투입해
연출 맡은 박인제 감독 "제작비 부담 없어"
"20부작 드라마 선보이는 게 훨씬 큰 부담"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딸이 태어난 게 영향을 줬죠."
디즈니+ 드라마 '무빙'을 만든 박인제(50) 감독에게 이 작품 연출을 맡은 이유를 물었다. 박 감독은 두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아이가 생긴 것이라고 했다. "제 딸과 류승범씨 딸이 같은 해 같은 달에 태어났어요. 촬영하면서 승범씨랑 아이 이야기를 참 많이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무빙'은 '한국형 슈퍼히어로'를 표방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진진한 사랑 이야기이자 가족 스토리다. 이미현·김두식·정주원·이재만 등은 초능력을 가지고 있어 특별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지만, 자식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모든 걸 내놓을 수 있는 평범한 부모이기도 하다. 킬러 프랭크는 자신이 제거해야 하는 능력자들을 만날 때마다 묻는다. "자식이 있나."
박 감독은 영화 '모비딕'(2011)과 '특별시민'(2017), 드라마 '킹덤' 시즌2(2020)를 만들었다. 말하자면 선이 굵고 상대적으로 음울한 분위기의 작품들이었다. '무빙'은 정반대다. 아기자기 하고 대체로 명랑하다. 이처럼 해보지 않은 걸 하겠다고 마음 먹은 건 딸 때문이기도 하고, 말 그대로 안 해본 걸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게 '무빙'을 택한 두 번째 이유였다. 박 감독은 "무조건 새로운 걸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모비딕'은 한국영화엔 없던 기자 얘기였어요. '특별시민'도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 이후에 없던 영화여서 한 겁니다. '킹덤'도 그랬고요. '무빙'도 이런 작품이 없었으니까 한 겁니다. 제가 잘하는 걸 하기보다는 해보지 않을 걸 하는 게 더 재밌어요. 전 아직 미숙하고 배울 게 많은 감독이라고 생각하는데, 안 해본 걸 해야 배울 수 있잖아요."
'무빙'은 약 500억원을 쏟아부은 드라마다. 디즈니+가 만든 한국 콘텐츠 중 가장 큰 제작비가 투입됐고, 최근 한국 드라마를 통틀어도 손꼽힐 만한 큰 규모 작품이다. 게다가 강풀 작가가 2015년에 내놓은 웹툰이 원작이다. 강풀 작가 작품은 웹툰으로서 성공하지 못한 게 없지만, 영화화 되면 흥행에 실패하는 징크스 아닌 징크스가 있기도 했다. 워낙에 많은 돈을 쓴 작품이라서 업계에서 '무빙'이 잘 안 되면 디즈니+도 곤란해진다는 얘기도 나왔다. 그러나 박 감독은 제작비에 대한 부담은 없었다고 했다.
"전 그냥 메이커(maker)잖아요. 제작비는 제가 생각할 게 아니라고 봐요. 그건 미국에 있는 월트디즈니에서 생각할 문제입니다.(웃음) 잘 만들면 잘 될 거라고 봤어요. 그리고 500억원이라는 돈만 보면 커 보이지만 회차 당 금액으로 보면 그렇게 크지 않습니다. 회당 25억원을 쓴 거니까요. 오히려 적은 돈으로 이 작품을 완성한 것에 자부심이 있어요."
박 감독 말대로 '무빙'은 20부작 드라마. 보통 지상파 방송사 드라마가 16부작이고, 스트리밍 플랫폼 드라마는 적게는 6부작에서 많아도 12부작이다. 회당 러닝타임도 지상파 드라마가 70분이라면, 스트리밍 플랫폼 드라마는 40~50분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점점 더 짧은 영상을 지지하고 있다. 유튜브에선 쇼츠가, 인스타그램에선 릴스가 인기다. 그런데 '무빙'은 정반대로 갔다. 박 감독은 "저한테는 거의 '모래시계'나 '여명의 눈동자' 같은 드라마를 찍는 정도의 미션이었다"고 말했다.
"제작비는 부담이 안 됐는데, 이건 부담이 됐습니다. 젊은 관객은 스무 개나 되는 에피소드를 본 경험 자체가 없잖아요. 미국 드라마라고 해도 '프리즌 브레이크'나 '로스트'를 본 세대도 아니니까요. 이젠 저 역시도 긴 드라마를 못 봐요. 이런 상황에서 이 긴 작품을 진득하게 앉아서 보게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던 거죠."
'무빙'은 13일까지 20개 에피소드 중 17개 에피소드 공개됐다. 박 감독에게 가장 좋아하는 장면 하나를 꼽아 달라고 했다. 박 감독은 7회 마지막 장면에서 봉석이 하늘을 나는 장면을 꼽았다. 엄마 미현은 봉석을 날지 못하게 하지만 봉석은 날고 싶은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 엄마 몰래 온 동네를 날아다닌다.
"이제는 하도 돌려 봐서 그런 감정이 사라지긴 했습니다만 처음 찍었을 때 이 장면이 정말 뭉클했어요. 봉석이 날아가는 게 마치 제가 만든 작품 같았거든요. 영화를 만들고 싶은데, 자꾸 엎어지고 실패하는 모습이요. 그런데 또 하고 싶어하는 게 봉석이 날고 싶어하는 것과 비슷해 보였습니다. 잘 찍었다, 못 찍었다를 떠나서 좋아하는 장면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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