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사나 리니우(45)는 우크라이나 출신 명지휘자다. 그는 클래식계에서 금녀의 영역이던 지휘계의 벽을 허물었고, 지금은 음악을 통해 누구보다 크고 명료하게 전쟁 반대와 고국의 평화를 외치고 있다.
첫 내한공연을 위해 한국을 찾은 리니우가 지난 12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국립예술단체 연습동에서 기자들을 만났다. 오는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와의 무대를 앞두고 막 리허설을 끝낸 그는 머리를 질끈 동여맨 편안한 차림이었다. 꼿꼿하고 자세, 살아있는 눈빛, 강단 있는 목소리가 강렬한 인상을 만들어냈다.
리니우는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 145년 만에 등장한 첫 여성 지휘자이자 259년 전통의 이탈리아 볼로냐 시립극장에서 금녀의 벽을 깬 음악가다. 2016년 우크라이나 르비우에서 열리는 '르비우 모차르트 국제 페스티벌' 창설을 주도했으며, 같은 해 우크라이나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창단, 예술감독을 맡아 지금까지 이끌고 있다.
리니우는 오는 17일 국립심포니를 이끌고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에 올라 우크라이나 작곡가 예브게니 오르킨의 '밤의 기도', 러시아 작곡가 라흐마니노프 등의 작품들을 들려준다. 우크라이나 전쟁 희생자들을 기리는 '밤의 기도'는 지난 3월 리니우 지휘로 우크라이나 청소년 오케스트라가 세계 초연한 작품이다. 단순한 선율이 내뿜는 긴장감이 쌓여 이르는 장대한 절정이 백미다.
"'밤의 기도'는 솔로 바이올린으로 시작합니다. 우리 중 누구라도 겪을 수 있는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죠. 외로울 때면 자신의 존재에 대한 질문을 하고 답을 찾는데 그 과정에서 기억과 생각, 꿈, 희망이 떠오르기도 하죠. 어둠 속에서 희망은 굉장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리니우는 그러면서도 "러시아 음악에 대한 보이콧은 반대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러시아 작곡가들의 음악은 한 나라에 속한 것이 아니라 세계가 공유하는 인류유산입니다. 푸틴의 것이 아닙니다. 차이콥스키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곡을 쓰기도 했어요. 150년 전 돌아가신 작곡가들의 음악을 지금 전쟁을 이유로 배제하는 것은 옳지 않아요."
그는 "이 작품은 단테의신곡을 연상하게 한다"며 "1부에서는 고통받는 영혼이 그려지고, 3부에서는 연대를 통한 구원의 메시지를 전한다"고 소개했다. "이게 제가 이 작품을 선택하게 된 개인적 배경이에요. 단테의신곡은 어둠에서 시작됩니다. 어둠 속에서 앞으로 나가려면 빛이 필요하죠. 세계에 빛과 어둠, 선과 악이 있고 중간은 없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선, 우리 안의 신적인 부분을 찾아내야 합니다."
리니우는 전쟁이 난 후 한 번도 고국에 가지 못했다. 부모님이 종종 오스트리아, 독일, 체코로 그를 만나러 온다. 오는 12월에는 오랜만에 고향을 방문할 계획이다. 버스와 기차를 타며 30시간 이상을 이동해야 하는 여정이다. "주로 전화 통화를 하는데 어머니는 제 전화를 받고 자주 우세요. 어떻게 될 지 한 치 앞을 모르는 상황이니까요."
전쟁 전 창단한 '우크라이나 청소년 오케스트라'의 무게축도 위기에 처한 젊은이들을 돕고 대피시키는 것으로 옮겨졌다. 우크라이나 청소년 오케스트라는 최근 우크라이나 합창단과 함께 전쟁 중 살해당한 우크라이나 시인의 시로 만든 오르킨의 칸타타를 벨기에 브뤼셀에서 공연하기도 했다.
"시인은 생전 다운증후군 아들을 위해 꿈과 선, 아름다움과 사랑으로 가득한 시를 지었죠. 그와 동시에 일기를 썼는데 우크라의 현실, 끔찍한 세상에 대한 묘사가 가득했습니다. 칸타타는 이 두 가지 세상이 격돌하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프로젝트명 '잃어버린 어린시절'은 우리 단원들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이미 어린시절을 잃었고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가'라는 어른의 문제에 직면했으니까요."
"키이우에서 온 14살짜리 새 단원에게 우리 악단에 와서 가장 좋은 게 뭐냐고 물어봤어요. '2주간 안전해서 좋았다. 대피소에 숨어있지 않고 사람을 만나고, 연대감을 느끼는 시간이 즐거웠다'고 하더군요. 키이우에는 지금도 계속 공습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예술은 단순히 즐거움이 아닙니다.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한 성찰이고, 답을 구하는 과정이죠. 예술에는 영혼을 치유하고, 정신적 혁명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힘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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