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컨템퍼러리 시즌 '싱크 넥스트 23' 중 하나
짧은 동영상 숏폼(short form)에 익숙하더라도, 이와 같은 형식을 무대에서 보는 건 아직 생소하다. 세종 컨템퍼러리 시즌 '싱크 넥스트 23(Sync Next 23)'의 하나로 지난 1~3일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펼쳐진 '백현진 쑈 : 공개방송' 첫 인상이 딱 그랬다.
서사는 물론 은유·상징이 없는 콩트 장면들이 맥락 없이 이어진다. 근데 기시감이 든다. 스마트폰을 통해 각종 소셜 미디어에 올라온 영상들을 빠르게 훑어 보는 우리의 일상적 행위가 겹쳐서다.
가수 장기하는 독백을 하는 가운데 삽화처럼 선율이 붙은 "갈 데까지 가보는 삶"을 수차례 반복한다. 배우 김선영은 무대에서 말 그대로 구른다. 배우 김고은은 거친 말을 쏟아내며 홀로 울부짖는다. 그렇게 감정을 소진한 김선영·김고은은 서로를 꼭 끌어 안는다. 그들이 버티고 산 무대가 턴테이블처럼 회전한다.
사실 기존 프로시니엄 무대 쇼 형식에 익숙한 관객에게 '백현진 쑈 : 공개방송'은 낯설다. 분절된 장면들이 관계성 없이 나열될 때, 이번 쇼의 극작·연출·음악·미술을 도맡은 백현진의 의도가 전달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이런 백현진 식 발화의 핵심은 말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에 있다.
배우·가수·작가·화가 등 다양한 직업을 갖고 있는 백현진에 대해 'N잡러' 등 여러 수식이 붙지만 정작 본인은 미니멀한 정체성을 내세운다. 말하거나 쓰는 사람. 그의 예측불가한 독특한 리듬은 여기에서 나온다. 다양한 은유, 상징으로 둘러싸인 시스템 속에서 젠체하는 게 아니라 그저 솔직하게 말하고 쓰고 들음으로써, 지금 무엇을 하고 있다는 자체가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하는 묘수. 그건 실시간으로 장면이 바뀌는 현재 문화에 대한 증상이자 열병이기도 하다. 매 장면마다 스타들을 섭외한 것도 그 장면에 대한 집중력을 높이기 위한 백현진의 비수다.
그런데 이 쇼엔 힘든 점 하나 있다. 극이 끝나면 무척 '모과'가 먹고 싶어진다는 것. 백현진이 막판에 부른 '모과' 때문이다. "모과 냄새가 소리 없이" 흐르다 보면, 바로 먹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까. 게다가 이 노래 음원은 아직 발매되지 않았다. 다행히 네이버 온스테이지에 그가 '모과'를 부른 영상이 있다. 곧 음원으로도 발매가 된다고 한다. 마침 가을이다. '모과'가 제철인. "모과 냄새 서서히 진동을 하네."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