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1871만건 신고…"배수구 막혔다"도
"자치경찰이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해야"
[서울=뉴시스]박광온 임철휘 기자 = "여기 비가 많이 와서 낙엽이 휩쓸려 배수구가 막혔어요."
지난 7월 서울의 한 파출소에 이 같은 민원 신고가 들어왔다. 경찰은 "관할 구청 사안이다"라고 거절했지만, 민원인은 "언제 또 구청에 전화하냐. 이러다 사람 다치면 너네가 책임질 거냐"라고 윽박질렀다. 혹여나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경찰은 현장으로 출동했다.
최근 '흉기 살인', '성폭행 사건' 등 흉악 범죄가 잇따르면서, 경찰은 순찰을 강화하는 등 치안 유지 활동에 경력을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경찰 일선 현장에선 '민원성 신고' 처리로 인한 경찰력 낭비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31일 경찰에 따르면, 경찰청은 지난 4일부터 '흉기난동 범죄 특별치안활동'을 선포하고, 순찰 강화와 선별적 검문검색 등을 실시 중이다. 특히 전국 다중밀집지역 총 247곳에 경력 1만2000여명을 배치하거나, 완전무장한 경찰특공대 전술요원(SWAT) 부대도 주요 거점에 배치했다.
흉기 난동 등 범죄 제압을 위해 테이저건뿐 아니라 총기 등 정당한 물리력을 주저 없이 사용하고, 흉기소지 의심자나 이상행동자에 대해선 절차에 따라 검문검색을 실시한다는 방침도 세웠다.
이는 최근 신림 흉기 난동 사건 등 흉악 범죄들이 잇따라 발생하자, 경찰의 현장 대응 능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정작 경찰 일선에선 범죄와 직접적 관련이 없는 '민원성 신고'들로 치안 대응에 차질을 빚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서울 남부의 한 지구대원은 "최근 흉악 범죄 사건들이 많이 발생해 지구대에선 순찰을 강화하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지자체나 소방이 해결해야 하는 일이 넘어오거나 고양이를 찾아달라는 신고가 들어오기도 해, 업무량이 많아 어려움이 많다"고 전했다.
실제 경찰청 통계 연보에 따르면, 지난 2021년 기준 전국에서 집계된 112 신고 건수는 1871만459건으로 하루 평균 5만건이 넘는 신고를 경찰이 처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중 범죄와 관련된 '중요범죄'와 '기타범죄' 신고 건수는 모두 합해도 전체의 15%(282만9427건)에 불과했다. 신고건수의 85%가량은 범죄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신고인 것으로 조사됐다.
허위 신고 역시 ▲2019년 4531건 ▲2020년 4063건 ▲2021년 4153건으로, 최근 3년간 매년 4000건 이상을 기록하는 중이다.
지난달 24일엔 "신림역 인근에서 흉기 난동이 벌어졌다고 한다"는 112 신고가 접수됐다. 당시 경찰은 15대가 넘는 순찰차를 현장에 배치해 일대를 1시간 넘게 수색했으나, 결국 허위 신고로 밝혀졌다.
문제는 이 같은 불필요한 민원성·허위성 신고가 현장 경찰의 발목을 잡는다는 점이다. 경찰력과 장비는 한정돼 있는데, 긴급 사건을 해결할 '골든타임'을 놓치게 하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이 같은 허위 신고로 정작 중요한 사건에 대한 출동이 늦어질 수 있다"며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경찰력 낭비 문제'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치안 상황에 맞게 경찰 인력을 재배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민원성 신고에 경찰력이 낭비 되지 않도록 조직을 세분화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도 말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민원성 신고의 경우는 자치경찰이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만들면 해결할 수 있다"며 "경찰 조직을 자치경찰, 국가수사본부, 경찰청으로 3원화해 운영하면 비효율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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